<김태준 목사 / 살렘교회>
제가 신학교에 가기로 마음 먹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말씀 중에 하나가 예레미야서 20장 14절 말씀이었습니다. 20장에서 예레미야는 선지자로서 삶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이렇게 힘든 마음을 쏟아냅니다.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이라고요. 당시 대학교 3학년이었던 저는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이 꼭 제 마음을 두고하는 말씀 같아서 ’선지자도 이랬구나’ 하는 것에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예수 믿으면 모든 것이 잘되고 기뻐야 한다는 “얄팍한” 말씀만 대하는 가운데 우울해 하는 내 자신이 한없이 믿음 없는 죄인처럼 느껴졌었는데 세상의 아픔을 함께 슬퍼하느라 이기기 힘든 마음의 아픔을 견뎌내야 했던 선지자의 삶을 발견하고는 아파하는 이들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 ‘감히’ 신학교를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신학교를 갈까 고민하다가 프린스톤 신학교를 결정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그 강변에서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라며 한탄했던 시편 137편 4절 말씀입니다. 한번은 어느 미주 기독청년들의 수양회에 가게 되었는데 그때 프린스톤에 재학중이던 어느 여자 전도사님이 시편 137편 4절 말씀을 가지고 설교를 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설교가 그때까지 들어본 그 어느 설교보다도 제 마음을 뜨겁게 하는 그야말로 메마른 땅에 단비와 같은 그런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의 내용은 이방인의 땅에 와서 살고 있는 우리 이민자들은 이 땅에서 부를 하나님의 노래를 찾아 부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 설교를 들으면서 ‘나도 저렇게 설교해 보았으면’ 하는 생각에 프린스톤 신학교를 가기로 마음 먹게 되었습니다.
금년도 교회 표어를 무엇으로 정할까 기도하는 가운데 그 때 들은 설교가 다시금 생각났습니다. 생각해 보니 코로나로 인해 세상이 바뀌면서 더 이상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그 전과 같지 않은 “이방인”의 땅이 되어 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장도 그렇고, 사업체도 그렇고, 교회도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움직이고 또한 그렇게 되기를 요구 받고 있는 이 새로운 “이방인”의 땅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의 노래를 어떻게 부를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시편 40편 3절의 말씀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라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땅에서 새롭게 불려질 새 노래를 주시는 한해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복음성가중에 이 시편 40편의 말씀을 가지고 지어진 곡이 있습니다. 그 곡 1절은 이렇게 노래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기도하면 / 귀를 기울이시고 내 기도를 들어 주신다네 / 깊은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주시고 / 나의 발을 반석위에 세우시사 나를 튼튼히 하셨네 / 새 노래로 부르자 라라라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 새 노래로 부르자 하나님 사랑을!
깊은 웅덩이와 같은 코로나의 힘든 2년 가운데 저희를 지켜 주시고 이끌어 주신 주님께서 새로 맞이하는 2022년도에 새로운 찬양과 노래를 저희에게 주사 하늘을 기쁘게 하며 땅에는 평강이 가득하게 하는 역사를 이뤄 주시리라 기대해 봅니다. 2022년은 하나님 주시는 새 노래를 더욱 힘차고, 신실하게, 그리고 기쁘고, 감사하게, 그리고 크고 아름답게 불러보는 가슴 벅찬 한해가 되기를 축원드립니다. 할렐루야!
--2022년 1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