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환 목사 / 시카고 기쁨의 교회>
비가 오면 생기던 웅덩이에 씨앗 하나가 떨어졌지.
바람은 나뭇잎을 데려와 슬그머니 덮어 주고
겨울 내내 나뭇잎
온몸이 꽁꽁 얼 만큼 추웠지만
가만히 있어 주었지.
봄이 되고
벽돌담을 돌던 햇살이 스윽 손을 내밀었어.
그때, 땅강아지는 엉덩이를 들어
뿌리가 지나갈 길을 열어 주었지.
비가 오지 않은 날엔 지렁이도
물 한 모금 우물우물 나눠 주었지.
물론 오늘 아침 학교 가는 길
연두색 점 하나를 피해 네가 ‘팔딱’ 뛰었던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말이야.
- “새싹 하나가 나기까지는” (경종호)
아이 하나 키우는데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고 했던가요? 이 시를 읽으니 마을 하나로는 어림도 없겠다 싶네요. 새싹 하나 나는데도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을 줄이야.
생명이 움트는 일에 나름 기여하면서 아무도 생색을 내지 않아요. 나뭇잎을 데려와 ‘슬그머니’ 덮어 준 바람, 추운 겨울 그저 ‘가만히’ 있어 준 나뭇잎, 봄이 되어 ‘스윽’ 손을 내민 햇살, 엉덩이 한번 슬쩍 들어준 땅강아지, 물 한 모금 ‘우물우물’ 나눠 준 지렁이. 점처럼 작은 새싹 피해 ‘팔딱’ 뛴 어느 학생까지.
저희 교회가 8살이 되었네요. 새싹 하나도 그냥 나는 게 아닌데, 교회 하나가 이만큼 피어나는 일이 그냥 될 리 없었겠죠. 슬그머니, 가만히, 스윽, 우물우물, 팔딱…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게 교회를 돌보고 사랑한 성도들 덕분입니다. 물론, 씨앗 하나를 이곳에 떨어뜨린 주님의 은총이 먼저이겠지요. 궁금하지 않나요? 이런 속깊은 사랑을 머금고 피어난 새싹이 앞으로 어떻게 자라날 지.
--2022년 2월 6일
#시를잊은성도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