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봉주 편집장>
고백컨대, 나의 신앙은 그리 오래지 않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 다니던 친구들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때 교회에 다니지 않았던 나는 어떤 사람이었냐면, 일요일에라도 시간을 아껴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고, 일요일에 교회에 가는 아이들을 좋게 보지도 않았다. 한창 입시 공부에 바빳던 고교 시절, 과외 공부를 했었는데 그 그룹에 꼭 한두 명은 열성 신자가 있었다. 일요일에도 공부를 해야한다고 생각했던 나와는 달리, 일요일에는 꼭 교회에 가야한다는 그 친구들때문에 과외 시간을 받을 수가 없어서 교회 다니는 친구들을 마음 속으로 미워했던 적이 있다. 유난히 교회에 열심이던 아이 중에 하나가 윤미였다.
윤미를 다시 만난 건 내가 결혼하고 미국에 와서 시카고에 살기 시작하던 때였다. 미국에 와서는 나도 전도를 받아, 드디어 교회를 제대로 다니기 시작하고 나의 마음에도 하나님을 모시고 믿음 생활을 하기 시작하던 즈음에 윤미를 다시 시카고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윤미를 다시 만났을 때엔, 어렸을 적에 교회를 다니느라 나의 공부에 대한 열정을 방해 (?)했던 윤미를 미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믿음 안의 동무로, 그리고 믿음의 선배로 윤미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윤미와 만나면서 나의 믿음도 자라기 시작했다. 그러던 윤미가 남편의 공부가 끝나고 한국으로 떠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비록 타주이기는 해도 미국 내에서 서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러다 윤미는 다시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여 내 곁을 떠나갔다.
한국으로 돌아간 윤미는 그 후에도 내게 연락을 끊지 않았다. 이번에는 카카오톡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통해서 내게 더 많은 친구들과 연결 시켜 주었다. 윤미 덕분에 어렸을 적 친구들을 다시 찾은 것이었다. 그리고 카카오톡을 통해 온라인으로 친해진 친구들을 몇 해 전에 내가 한국으로 갔을 때에 오프라인으로도 만나게 되었다. 거의 오십년 만에 만난 옛 동무들을 만났지만 우리들은 그 헤어졌던 오랜 시간들이 무색하게 다시 히히덕 거리며 옛날 어렸을 때와 똑같은 모습이 되어 있었다.
친구들 중에서 가장 친했던 아이들, 윤미를 비롯해 성혜, 소희, 건화, 혜주, 은미 등은 더우기 신앙 안에서 더 깊은 믿음의 교제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냉큼 나도 끼워 달라고 해서 그 이후로 지금까지 그 카톡방에서 동무들과 믿음의 교제를 하고 있다. 이 카톡방의 리더는 역시 윤미. 윤미는 매일 매일 우리들에게 그날의 성경 구절과 묵상 말씀을 카톡방을 통해 전송해 오고 있다. 정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매일, 아침마다. 다른 친구들은 “아멘”이나 간단한 기도, 또는 한 구절의 묵상으로 대답하지만, 우리는 윤미 덕분에 매일 매일 말씀의 양식을 받아 먹고 있다. 때로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전하기도 하고, 소식을 전하기도 하고, 생각을 나누기도 한다. 우리는 언젠가 성지 순례 여행도 함께 가기로 했다. 우정이 신앙의 교제가 된 참 귀한 모임이다.
윤미를 비롯해 우리 믿음의 동무들이 몇년 전, 내가 한국에 방문했을 때에 한 자리에 모였다. 나의 어렸을 적 소꿉 동무였던 성혜는 옛날엔 작은 일에도 눈물 흘리는 울보 평강공주였는데—성혜가 울 땐 내가 온달이 되어 주어 그애의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었다. 믿거나 말거나-- , 지금은 여장부가 되어 교회에서나 동창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여 대접하는 마르다가 되어 섬김의 본이 되고 있다. 은미는 어찌 그런 잘난 남편을 두었는지, 엘에이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유명한 목사이며 신학교 교수인 남편을 잘 내조하는 “내조의 여왕” 사모님이다. 어렸을 때부터 똑 소리나게 똑똑이였던 소희는 이젠 “Café 21g”이란 커피집의 여사장. “21g”의 비밀이 무엇인지 왠지 이 카페에 가면 소희가 만들어 주는 커피가 무지 맛있을 것 같다. 왕년에 “약대 나온 여자”, 혜주는 의외로 KBS FM 라디오의 방송작가더니, 지금은 부산에 예쁜 호텔을 운영하는 호텔리어. 혜주는 자신이 입는 옷을 직접 지어 입는 놀라운 솜씨의 보유자인데, 당시 초등 동창회의 부회장이었던 혜주는 여동창들에게 봄 코트를 손수 지어 선물하여 우리 모두를 멋쟁이로 만들어 주었다. 나는 아직도 혜주가 만들어 준 이 코트를 애정하여 봄, 가을에 즐겨 입는다. 우리 동창들 중 유일하게 학창시절, MBC 장학퀴즈에 나왔던 우등생, 건화는 두 딸을 일찌감치 시집 보내고 서울에서 큰 교회의 권사님으로 우리 모두의 신앙의 본이 되어 주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모범생으로, 우등생으로, 화려하게 한 가닥들 했던 우리 동무들은 지금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사는“믿음의 여인들”이 되어 있었다.
몇년 전부터 윤미는 오스왈드 챔버스의 “주님은 나의 최고봉”에서 1년 365일 매일 묵상을 우리와 함께 나눠주고 있다. 아마 윤미는 매일 새벽 예배 후 그녀의 묵상을 기도와 함께 우리에게 나눠주는 거겠지. 나이 들어 이젠 그만 할 때도 되었으련만, 윤미는 아직도 교회에서 매일 새벽 예배의 피아노 반주를 섬기고 있다. 오랜만에 우리와 만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을 때에도 윤미는 다음날 새벽 예배를 위해 귀가를 서두른다. 옛날 어렸을 때에 공부보다 주일날엔 교회 예배를 섬기던 그애의 마음을, 이젠 나도 같은 믿음의 동무가 되어 귀히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