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봄

 

 

 

 

<김태준 목사 / 살렘교회>

 

시카고 날씨가 예측을 불허하게 바뀌고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은 50도에 이르는 따뜻한 봄 날씨 같더니 눈과 얼음이 녹는다는 우수 전날인 목요일에는 난데없는 폭설이 내려 다시금 온 세상을 얼어 붙게 했는데 ... 이번 주일에는 다시금 50도에 가까운 따뜻한 날이 예보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다음 주 수요일에 다시 눈이 오는 겨울 날씨가 된다고 하니 ...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어려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네요.

 

시카고 겨울 날씨가 워낙 예측할 수가 없어 5월에도 눈이 내리는 경우가 있기에 조금 날씨가 따뜻해졌다고 성급하게 겨울 옷을 정리해서 집어 넣으면 금방 후회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셨죠? 겨울과 봄을 시시때때로 오가는 시카고 겨울 끝자락에는 한 발은 겨울에, 다른 한 발은 봄에 걸쳐 놓은 애매함 가운데 살아야 하는 고충이 늘 있는 것 같습니다.

 

 2주전부터 교회 본당의 히터가 말썽을 부리고 있습니다. 장로님과 권사님들께서 열심히 손을 봐 주고 계신데 워낙 오래된 히터라 교체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겨울이 얼마 남지 않은 때(?)에 큰 돈을 들여 교체하기는 조금 그렇고 ... 이 참에 봄이 확 와버리면 기다렸다가 가격이 내려가는 여름에 교체하면 좋을 것 같은데, 날씨가 따뜻해 지는 것 같다가 다시 추워지고 하니 결정을 내리기가 조금은 애매하네요.  시카고에서 40년을 살았으니 이제는 시카고 봄의 애매함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아직도 애매함은 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들의 삶 자체가 애매함 그 자체인데도 말이죠.

 

 예수를 믿어 하늘 백성이 된 우리가 땅에 거하며 산다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애매한 것이죠. 아직 온전한 천국 백성은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에 100% 속한 삶도 아니고 ... 은혜 받으면 천국 백성처럼 기쁨과 감사함 가운데 살다가 곧 육신의 연약함을 탓하며 땅의 백성으로 추락하기도 하는 것이 우리의 “애매한” 삶의 모습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애매함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충실해야 하는 것이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살아보니 흑백으로 명확하게 나눠질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회색 빛의 애매한 부분이 많더군요. 관계에 있어서도 매일 좋기만 한 관계도 없고, 매일 싫기만 한 관계도 없지요. 어느 때는 좋았다가 멀어지는, 또는 멀어졌다가 좋아지고 싶은 그런 애매한 관계 속에 있는 우리를 발견하곤 합니다.

 

 미래를 향한 계획을 세울 때도 그렇습니다. 아직 이뤄지지 않은 일들을 바라보면서 빨리 그 일이 이뤄졌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지만 때론 옛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가는 그 “애매한” 중간 지점이 생각 외로 길 수 있다는 것을 자주 잊곤 합니다.  목회자 안수 심사위원을 10년 가까이 하면서 늘 살펴본 후보의 자질 중 하나는 ambiguity (애매함)에 대한 “편안함” 이었습니다. 때론 너무 천천히 흐르는 것 같은 하나님의 은혜의 강에 삶을 온전히 맡기고 애매함의 회색 광야를 편안하게 건널 줄 모른다면 어려운 목회 현장에서 금방 지치고 포기할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시카고 겨울의 애매함에 코로나의 애매함이 더해진 2월의 끝자락, 과거를 보며 지치지 않고, 아울러 미래를 보며 안달하지 않고, 지금 주어진 오늘의 은혜에 충실하자 다시한번 다짐해 보는데 ... 일기예보는 왜 자꾸 보게 되는지 모르겠네요.

 

--2022년 2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