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환 목사 / 시카고 기쁨의 교회>
어떤 경우에는
내가 이 세상 앞에서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내가 어느 한 사람에게
세상 전부가 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
-- 이문재, <어떤 경우>
짧지만 한참을 들여다 보게 되는 시입니다. 시인이 각주에서 말하 듯, 첫 두 연은 시장 골목 입간판에 쓰여 있는 영문 글을 우연히 보고 거의 그대로 옮겨왔답니다. 시 참 쉽게 쓴다, 싶지만 마지막 연을 보며 놀랍니다. ‘어떤 경우에는'을 ‘어떤 경우에도'로 바꿈으로, 어느 누구도 어떤 순간에도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말처럼, “이 시는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다'라는 인식을 생산해”냅니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닌 존재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요. 내가 그토록 힘들게 한 일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는 우리를 다독이며 말합니다. 그대가 누군가의 세상 전부일 수 있다고. 그대에게도 세상 전부인 누군가가 있지 않냐고. 어떤 경우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라고.
모든 것이 부질없다고 느껴지고 스스로 하찮게 느껴질 때, 교회가 이것을 일깨워주는 믿음의 공동체였으면 좋겠습니다. 믿음이란 건, 그 어떤 경우에도 이 음성을 기억하는 것이니까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
--2022년 3월 13일
*사진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mH59j-e1OV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