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호 목사 / 포항제일교회>
“오늘 당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전철 --지하철이 아닌-- 을 타고 지나다니면서 잠시, 그러나 정기적으로 보게 되는 글귀,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칠 수 있지만 한 번 눈에 들어 오고 나면 마음에도 들어와 자리를 잡는 그런 문장.
"오늘날 교회가 줄 수 있는 것이 고작 저런 상투적인 위로냐?" 하는 이들도 많지만, 당신은 저런 얄팍한 위로라도 줘 봤나라고, 안도현 식으로 묻고 싶다.
저 말의 깊이나 무게보다는 숨 쉴틈 없이 살아가는, 경쟁과 비교, 짜증과 불안으로 가득찬 삶에 약간의 틈새라도 허용하는 말이라는 걸 높이 사고 싶다. 직선적으로 기독교의 진리를 전하는, 사명감 충만한 문장이었다면 눈에 들어 왔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저 숨쉴 공간이다. '추앙'이라는 말도 그 사전적 의미보다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맥락에서 튀어 나와 묘한 틈새를 만드는, 그런 매력 때문에 끌리는지도 모른다. 나도 오래 묵혀 왔던, 그러나 어울리는 맥락을 찾지 못해 묵혀만 왔던 그 말을 내뱉어도 될 것 같은 용기도 덤으로 주고.
사람들이 교회에 기대하는 것이 대단히 크고 근원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 미정이 엄마는 맨날 돌아서면 밥 안치고, 밭에 나가고 하는 생활, 하루라도 숨 좀 쉬고 싶어서 "교회라도 가면..."이라고 했다. 그렇게 생긴 틈새에서 가끔씩 대단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은혜를 받기도, 인생의 방향이 전환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좋다. 그 약간의 공간, 각박한 사회가 규정하는 '나'와는 다른 '내'가 있다는 희미한 느낌만 줄 수 있어도 좋다. 해방이 가장 필요했던 사람은 이 가정의 엄마였는데, 죽어서야 그 해방된 것은 안쓰럽다. 마지막 대사가 "교회 갈거야"였으니... 하나님도 잘 봐 주셨을 것 같다.
그 속 넓은 엄마도 도저히 참기 힘들었던 순간은 아버지와 아들이 합세하여 철없는 속도 경쟁할 때였다.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벽이 무너진 순간이었으니, 그 치기를 크게 나무라고 싶은 마음도 없다.
천천히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보고 있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11회에서 염미정이 내 준 숙제를 목사들이 붙들고 씨름해 보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드라마 끝내는 시점이 숙제 제출일일 것 같은 묘한 압박감 때문에.
"어려서 교회 다닐 때 기도 제목 적어내는 게 있었는데 애들이 쓴 걸 보고 이런 거를 왜 기도하지. 성적, 원하는 학교, 교우관계 고작 이런 걸 기도한다고? 신한테, 신인데? 난 궁금한 건 하나밖에 없었어. 나 뭐예요? 나 여기 왜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