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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흑인의 1차 대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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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미국의 흑인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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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시카고의 흑인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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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시카고의 흑인 지역

 

 

 

 

 

 

       

 

<김 신 교수>

 

 

여러 번 언급한 대로, 1차세계대전이 길게 잡아도 참전기간이 17개월에 불과한 미국에게도 그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물론, 1차대전이 워낙 큰 규모의 참혹한 살육전쟁인 탓도 있지만, 미국에게는 무엇보다도 ‘20세기 초라는 시기적인 이유가 크다.  20세기 초의 미국은 한 마디로, “극과 극이 공존하는 역설의 사회였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1) 1차대전이 발발하기 전 미국은 이미 2차 산업화와 도시화를 마무리하며 세계 최대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지만, 소수의 자본가와 절대 다수의 근로자 간의 극대화된 소득 불평등은 과연 미국이 하나의 사회로 유지될 수 있을지를 염려하게 만들었고,

(2 )스페니시-아메리칸 전쟁 (1898.4.25-1898.8.12)의 승리로 제국으로의 위상이 올라가는 데도 고립주의 몬로 독트린(Monroe Doctrine)을 고수하고 있었으며,

(3) 1890-1914년까지 24년 간 15,000,000명의 주로 동, 남유럽의 카톨릭과 동유럽과 러시아의 유태인 이민이 유입되어 미국은 누구를 위한 국가인가? 누가 미국인이어야 하는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논란과 반-이민 사조가 증폭되었다. (*참고로, 1812년 영국과의 마지막 전쟁 이후 1890년까지의 서유럽 이민이 약 천 오백만 명이다.)  

 

  오늘은, 시카고역사 #38에서 살펴본 1919뜨거운 여름 (Red Hot Summer)’의 시카고 인종폭동의  배경이 된 미국 최남부지역 (Deep South)의 흑인 (African American)1차 대이동 (이하 ‘1차 대이동이라 함)을 살펴보려 한다. 1916년에 시작되어1930년까지 이어진 ‘1차 대이동;에서는 흑인 약 150만명이 주로 북동부와 중서부의 도시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남부지역 흑인의 1차 대이동은 미국 흑인 도시화의 시작이고 미국 흑인의 중심이 남부지역 일변도에서 북동부와 중서부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로, 2차세계대전이 직접적 촉매가 되었던 2차 대이동으로 약 550만명의 흑인들이 북부, 중서부, 서부 등 전국으로  퍼져 나가며  흑인 차별’, 특히 법적인 차별은 명실상부한 미국의 이슈가 된다.


우선, ‘최남부 지역은 어디일까? 단적으로, 미 남부의 짐크로 (Jim Crow)’ 사회, 그 중에서도 1차 대이동은 주로 조지아, 알라바마, 사우스캐롤라이나, 미시시피, 루이지애나, 아칸소에서 이뤄졌다.

 

이쯤에서, 남북전쟁 (1861-1865) 후의 미 흑인 역사를 간단히 정리해보자.  남북전쟁 이후10여년 지속된 (1865-1877) 재건설 (Reconstruction) 기간에 통과된 흑인과 연관된 헌법수정안은 13, 14 그리고 15차 수정안이다. 1865 12 18일에 통과된13차 헌법수정안으로 범죄에 대한 처벌이 아닌, 노예 취급이나  강제 노동은 전면 금지되었고, 1868 7 9일에 통과된14차 수정안은 어느 주에 거주하던지 미국태생  흑인은 자동적으로 미국의 시민 됨을 확인하였고, 187023일 통과된 15차 수정안은 인종, 피부색, 노예 경력에 차이를 두지 않는 선거권 부여를 천명하였다. 이러한 3차에 걸친 헌법 수정안으로 미 전역에서 흑인들은1870년부터 온전한 법적 평등을 누리게 되었다.

 

이렇게 버지니아에서 텍사스에 이르는 남부 11개 주를 5 구역으로 나누어 연방군대가 점령, 관할한 재건설 기간동안 남부 전 지역에서 흑인들은 괄목할 만한 정치,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다.  상상을 초월한 흑인들의 지위 신장에 깜짝 놀란 남부의 백인들은 KKK (Ku Klux Klan)이 흑인들에게 가한 린치를 묵인하며 이를 갈다가, 1877년에 정치적으로 협상하여 연방군대가 남부에서 철수하자마자 곧바로 남부의 로칼, 주정부를 장악하며 극심하고 체계적으로 법적 차별을 하고 신체적으로 폭력을 흑인들에게 쏟아 부어 그때까지 이루어 낸 흑인들의 정치, 경제적 성장을 원천 무효화시킨다. 이에 사용된 법적 제재가 짐크로 (Jim Crow)이다.

 

연방법은 흑인 차별을 금지하는데, 로칼, 주법은 흑인 차별을 정당화한다? 어느 것이 우위일가? 물론, 연방은 멀었고 로칼, 주정부는 가까웠다. 이렇게 남부지역 전체에 퍼진 짐크로 법은 1892년에 연방대법원이 ‘Separate but Equal’ (격리, 그러나 균등) 원칙을 내세워 합헌 판정을 내리면서, 1960년대 중반까지 남부 전 지역은 공원, 버스, 기차, 학교 등 모든 영역에서 흑인과 백인을 철저하게 격리시키고 차별한다.  극심한 수탈을 당하였으니 흑인들이 남부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던 듯 하다. 1900년 센서스에는 미국 흑인의 92%가 남부에 거주한다고 나와있다.

 

그러니까, 1 대이동은 남부지역의 ‘push factor’ , 중서부지역의 ‘pull factor’ 1 대전을 기점으로 동시에 작동하였기에 이뤄진 것이었다. 남부에서 흑인들을 밀어낸 것은 단연코 인종 박해이다. 1880년 경부터 본격화된 남부의 흑인 탄압이 20세기 초에는 아주 조직적이고 잔인해졌는데, 이에 더하여 1910년 초의 목화 (cotton)의 불황은 남부 농촌 지역 흑인들의 생활을 더욱 더 힘들게 했다. 반면에, 북부 지역의 매력은 법적 평등(equality) 과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higher wage)이다. 그 당시 남부 흑인 소작농의 임금은 한 주 (week) $2-$3이었고, 북부 도시 흑인 노동자는 하루에 $2.50을 받았다고 한다.

 

1차대전의 연합국 지원으로 늘어난 생산 체재 활성으로 야기된 노동력 절대 부족이 임금 인상에 대한 강력한 요구로 이어지자 기업주들은 먼저 백인 여성 노동력을 끌어들인다. 그 당시 기업주들의 통념은 흑인=비능률적이고 게으른 일꾼이었기에  가능한 한 흑인고용은 기피했다. 그러다가1917년에 미국의  참전이 결정되면서 백인 여성만으로는 부족한 노동력을 도저히 메울 수 없어  할 수 없이 흑인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잠깐! 그때까지 미국 노동 시장의 저임금 단순 노동력을 담당했던 동, 남유럽 이민은 어찌되었지? 19141차대전이 시작되자, 유럽 각 국은 곧바로 자국민의 해외 이민을 전면 금지시켰다. 그 덕분에,  남부 흑인들은 북부와 중서부 도시에서 작은 스케일의 ‘American Dream’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고, 새로운 곳에서의 삶을 선택한 것. 1차 대이동에서 남부 흑인들의 이동을 독려하는 데에는  시카고의 흑인 언론 시카고 디펜더 풀만 기차 승무원들의 역할이 크다. ( 시카고역사 #32 참조) 

 

1차 대이동 기간의 남부 흑인들의 이동 경로를 따라가 보자. 이들은 먼저, 남부 농촌지역에서 남부의 도시로--Birmingham, Jackson, Hattiesburg(MS), Memphis, New Orleans -- 옮겨 일하여 차비를 마련한 후에, 시카고 같은 북부와 중서부 도시로 이동한다. 남부의 도시를 떠날 때 이들은, ‘흑인전용 열차칸’, ‘Negro car’에 탑승을 하여야만 한다. Free state로 넘어가기만 하면 흑인 전용이 아닌 다른 기차칸으로 자유롭게 가 보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흑인전용 기차칸에 불안한 마음으로 앉아 있는 데, 도무지 언제 북부 지역으로 들어왔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많은 남부 흑인들은 그때까지도 남부와 북부 사이에 철조망이 쳐있다고 생각했는데 철조망이 보이지 않았기에. 다행히 일리노이 경계는 오하이오강이어서 식별이 그래도 쉬웠다. 일리노이 주에 들어오면서 큰 용기를 내어 다른 열차칸에 옮겨 가보는데 생전 처음 백인 가까이 앉아보는 것이어서 한숨도 몰아쉬게 되고 어정쩡한 자세로 눈치를 보는 것이 영락없는 해외 이민자 모습이다.

 

여느 북, 중서부 도시나 마찬가지로 이들은 시카고에 도착하면서 아주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거의 모든 도시에 법적 (de jour) 차별은 없으나 실질적 (de facto) 차별이 엄청났기에. 특히 시카고같이 흑백 거주지역이 확실하게 격리되어 있는 곳에서는 제한된 흑인지역 안에 숙소를 마련하는 것이 아주 힘들었다고 한다. 도시생활에 문외한이었던 이들은 사기도 엄청 많이 당했고 같은 도시의 흑인들과 문화적 갈등도 겪었다.  기차에서 내려 어찌해야 할지 몰라, 열차 승무원에게 “Where can I go?”라고 묻는 것이 비일비재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 그래도 시카고에서는 Urban League가 앞장서서 이들의 시카고 정착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도왔다.

 

1차대전 발발 당시 시카고에는 최남부지역이 아닌 켄터키, 테네시 등의 borderline남부지역 출신 3만 내지는 4만명의 흑인이  26가에서 55가에 이르는 스테이트 길 가의 좁고 기다란 지역, ‘Black Belt’  살면서 주로 다운타운의 서비스 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당시 시카고 인구가 2백만 명이 넘었는데, 흑인 인구가3만에서 4만명이니 눈 여겨 보지 않은 탓인지 그 당시의 흑인들의 생활 기록을 찾기가 쉽지 않다.

 

1차 대이동으로 1918년이 되면 시카고의 흑인 인구는 최소 10만 명으로 증가한다. 아무리 주거지역을 제한하여도, 인구가 늘어나면 Black Belt지역이 확장될 수밖에 없다. 오래된 중산층 흑인들은 더 남쪽으로 내려가기도 했지만, 흑인지역의 동서쪽에 위치한 백인지역 주민들의 흑인지역 확장 반대는 아주 격렬해져서 이때부터 시카고의 Black Belt는 미국에서 인종적으로 가장 격리된 지역이라는 오명 (?)을 얻었고, 이로써 잔인한1919년 시카고 인종폭동의 기반이 마련되었던 것이다.

 

사회진화론이 대세였던 20세기 초, 1919년 시카고 인종폭동의 주동이 Black Belt 바로 옆의 브리지포트의 아이리시였다는 것은 사필귀정아닐까 싶기도 하고, 1966년 마틴 루터 킹목사가 시카고의 흑인 주거지역의 차별 제한 철폐를 위해 그 당시 시장인 데일리 (Richard J. Daley 아버지 데일리)에게 담판을 시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버지 데일리는 1919년 브리지포트의 아이리시 클럽의 총무 답게 끝까지 킹 목사 면담을 피하였을 뿐 아니라 anti-킹 목사 흑인 그룹 조직을 시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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