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준 목사 / 두란노 침례교회>

 

 

안녕하세요, 형제님.

 

지난 금요일 새벽 집을 나서며 눈을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올 겨울에는 처음으로 쌓인 눈을 본 겁니다. 물론 적설량이 많지 않아서 희끗희끗한 반백의 풍경이었지만 기분은 참 좋았습니다. 형제님, 새벽의 쌀쌀한 공기 속에서 눈 덮힌 풍광을 한 바퀴 휘 둘러보는데 ‘시카고는 참 좋은 곳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뚜렷한 4 계절을 즐길 수 있으니 말입니다. 주변에서 눈 많고 추운 시카고를 떠나 따뜻한 곳으로 이주해가거나 또는 가고 싶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그럴 때마다 ‘시카고 보다 더 좋은 지역도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이젠 시카고언, 즉 시카고 사람이 다 된 모양입니다. 그래서인지, 스포츠의 광팬은 아니지만, 볼 기회가 주어지면 제 응원의 대상은 늘 시카고 소속팀들입니다. 목회 소명을 받기 전 한 전자 회사의 주재원으로 시카고 땅을 밟은 것이 1992년이니까, N.J.에서 근무하던 1년 7개월을 빼고도 18년 가까이 산 땅이라 이곳이 고향으로 자리잡은 모양입니다. N.J. 근무를 마치고 이곳으로 되돌아올 때도 제 가슴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자의 묘한 흥분으로 가득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먼저 목회를 시작한 친구가 프린스턴 신학교를 적극 추천했어도 무디를 택했던 이유의 절반도 시카고에 대한 정으로 돌려야 맞을 겁니다. 신학 공부를 위해 3년 반을 매주 두 세 차례 드나드는 동안  발견하게 된 다운타운의 매력은 시카고에 대한 정을 더 깊게 만들었구요. 수 개월만에 보는 눈덮인 경치가 시카고를 향한 제 다정(多情)을 드러내고 말았군요.

 

교회를 위해서 일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형제님, 최근 우리가 편지를 통해 나누고 있는 주제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말씀 속에 깊이 빠져본 건 1997년이었습니다. 목회의 소명을 받기 바로 한 해 전이지요. 형제님, 그때 말씀이 꿀처럼 달다는 성경 구절을 그대로 믿게 되었습니다. 직장에 일찍 도착해서 최소한 30분은 말씀을 읽어야 했구요, 퇴근하면 다시 성경을 붙들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어내려 갔습니다. 출장 준비할 때면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이 성경책이었습니다. 기내에서 성경을 읽는 재미란…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흐뭇해집니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짜투리 시간은 언제나 성경 읽기로 채워졌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읽다보면 생각지도 않은 장소에서 믿음의 사람을 만나 대화할 기회를 얻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전 1997년 한 해를 말씀의 해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성경을 읽는 중 예수님을 제외하고 제 가슴에 가장 깊이 새겨진 인물은 바울이었습니다. 특히 사도행전과 빌립보서를 읽는 동안 이 분은 참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잃은 영혼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뜨거운 열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바울은 제 신앙에 예수님 다음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바울의 삶을 통해서 배울 수 있었던 가장 큰 교훈은 잃은 영혼을 구하는 일이 엄청난 축복이라는 진리입니다.

 

사도 행전을 보면 이런 장면이 등장합니다. 바울은 에베소라는 지역에서 복음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바울은 두란노라는 서원을 빌려서 매일 그곳에서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얼마나 열정적으로 말씀을 가르쳤는지, 소아시아 지역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가 전하는 복음을 들으러 왔고, 또 복음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지역에 돌아가 그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2년 반 쯤 지나자 지금의 터키라고 할 수 있는 소아시아, 그 넓은 지역에 복음이 다 전해지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방송도 없고, 교통 수단도 형편없던 당시의 상황을 고려할 때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난 겁니다. 자신이 전한 복음이 소아시아 곳곳으로 퍼져간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바울은 얼마나 기뻤을까요?

 

이런 기적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가능했습니다. 바울을 선교사로 세우신 것도 하나님이셨고, 그가 복음을 잘 전할 수 있도록 도우신 분도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특별한 능력을 부어주셨습니다. 바울에게 치유의 은사를 주셨던 겁니다. 바울이 손만 대면 아픈 자들이 치유되는 겁니다. 심지어 바울이 두르고 있던 앞치마나 사용하던 손수건을 가져가 병자의 몸에 얹기만 해도 병이 나을 정도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중 경험하게 되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보면서 바울이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자신과 자신의 친지들에게 일어난 기적을 직접 경험한 에베소 사람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귀를 기울이고 믿음을 드렸던 겁니다.  

 

사실 에베소는 우상 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특히 마술책과 부적이 유행했습니다. 인쇄술이 발달한 지금이야 책의 가격도 싸고 구하기도 쉽지만, 바울 당시는 지금과 사정이 전혀 달랐습니다. 하지만 에베소 사람들은 비싼 책값이 문제가 안 되었습니다. 마술책과 주술을 담은 부적이 있어야 신이 보호해 준다는 그릇된 믿음 때문에, 집집마다 이런 종류의 책과 부적이 넘쳐났습니다. 그런데 바울을 통해서 그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이 지닌 무한한 능력을 직접 체험하면서, 에베소 사람들은 자기들이 섬기던 신들이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게 된 에베소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비싸게 구입했던 마술책과 부적들을 들고 나와 광장에 쌓기 시작했습니다. 쌓인 책의 가치가 은 오만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대략 4백만불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입니다. 하지만 바울을 통해 누가 참 신인 줄을 깨닫게 된 에베소 성도들에겐 아무런 가치가 없는 쓰레기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쓰레기 더미를 아낌없이 불태워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늘로 치솟는 불길을 바라보면서 바울은 얼마나 기뻤을까요?

 

바울은 이 기쁨을 감옥에서도 누립니다. 빌립보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생사의 기로에 놓여있던 시기에 쓴 편지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편지를 통해 자신의 가슴을 채우고 있는 기쁨을 수 차례 표현합니다. 그 기쁨의 근본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복음의 진보였습니다. 자신이 감옥에 갇힘으로 인해 복음 전파도 끝장난 줄 알았던 바울은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선교 열정에 도전받은 성도들이 일어나 복음 전파 사역이 지속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소식을 듣고 자신이 감옥에 갇힌 현실은 까맣게 잊은채 기뻐했던 겁니다. 바울은 잃은 영혼을 구하는 사역에 충성함으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축복을 받았던 겁니다. 

 

형제님, 이 땅의 모든 성도들은 복음을 전할 특권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 특권을 어떤 특정한 성도들에게만 주어진 것으로 오해합니다. 아니,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이 특권을 사용하는 모든 성도들에겐 바울이 누렸던 기쁨의 축복이 똑같이 주어집니다.

 

전도하러 가자고 하면 많은 성도님들이 불편해합니다. 많은 분들이 다음을 기약하며 뒤로 물러섭니다. 그런데 반강제적으로라도 전도의 자리에 모시고 가면, 돌아올 때 표정부터 달라집니다. 기쁨으로 가득한 겁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의 축복 때문입니다. 형제님도 꼭 이 귀한 체험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다음 전도 때 꼭 같이 나가길 바랍니다.

 

다음 편지를 드릴 때까지 하나님의 축복으로 가득한 하루하루가 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