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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 시대 알코올 소비량, 알코올 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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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 단속 모습, 다운타운 밀주 양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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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시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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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 12.5. 시카고 팔머 하우스 바에 모인 인파

 

                                                                                                                                                                        

 

< 교수>

 

미국의 금주시대18차 헌법수정안이 발효된1920117일부터 21차 헌법수정안이 36개주의 비준을 얻은1933125일까지 지속되었다. 18차 헌법수정안은 금주 헌법이고 21차 헌법수정안은 18차 헌법수정안을 폐기처분한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금주법을 로칼, 또는 주 정부 관할 사항으로 원상 복귀시킨 것이다.

 

18차 헌법수정안은 1년 조금 넘는 기간에 통과에 필요한36개 주 비준을 받은1919116일에 확정되었고, 1년 후에 발효가 되었다 (시카고역사40 참조). 21차 헌법수정안은 1933220일에  연방국회를 통과, 9개월 15일 만인 1933125일에 36개 주 비준이 확정되자 곧장 발효되었다. 18차 수정안의 빠른 통과에는 1차세계대전과 스페니시독감 팬대믹이 작용했고, 21차 헌법수정안의 더 빠른 통과와 발효는 무엇때문이었을까? 단적으로, 그 이유는 금주헌법의 인기 없음 (unpopularity)” 이지만, 오늘은, 1920년대 미국의 모습을 시카고를 예로 살펴보며 금주헌법의 인기가 땅 속으로 묻히게 된 배경을 알아본다.

 

우선, 사회적 배경을 보자: 1910년대 후반에 1차세계대전, 스페니시 독감, 인종 폭동 같은 굵직 굵직한 사건들로 심한 몸살을 앓았던 미국의 1920년대는 봇물 터지듯 재개된 동-남유럽 이민으로 시작되어, 2 Ku Klux Klan운동이 북부와 중서부에서 빠르게 확산되었으며, 러시아 혁명 (1917)과 공산주의 체재에 대한 공포가 1 Red Scare (공산주의 동조자 색출)로 표출되어 수많은 무고한 지식인들이 곤욕을 치렀다. 그런가 하면, 1차대전 참전에서 비롯된 여성들의 노동시장 참여로 큰 호응을 얻은 여권신장 운동은 종래의 가부장적인 빅토리안 생활 방식을 성 해방에 기반한 모던 생활 양식으로 대체하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고, 알코올 소비가 모던 중-상류층 상징 (status symbol)이 되는 등, 자유분방한 사회풍조가 대세가 되었다.

 

이미 언급한 대로, 일상 (normalcy)이 보류되었던 1910년대를 끝내면서 누구나 일상으로의 복귀 (Return to normalcy)’를 원하지만, 돌아가야 할 일상에 대한 여러 다른 견해들로 인해 시끌 시끌, 흔들 흔들혼돈의 상황에서 법률 제정을 통해 사회적 불안정을 해소하고 사회를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려는social engineering의 노력들이 본격적으로 현실화 되었다. 금주 헌법은 물론, 2Ku Klax Klan, 1 Red Scare, 그리고 1924526일의 ‘1924년 이민법 (National Origins Act)’, 모두 그 시대의 social engineering 사조를 반영한 것이다. 또한, 이 모든 운동과 입법의 이념적 근간은 사회 진화론이다.  

 

금주헌법을 추진한 많은 리더들은 이 금주법이 미국 가정을 재정적, 문화적 파탄에서 구해 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알코올 경비의 절감은 빈곤층과 범죄율감소로 이어질 것이며, 술 장사들의 뇌물 공세로 부패한 로칼 정부도 정신차릴 것이고, ‘대신 우유를 소비하는 등 건전한 식품문화가 생길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아니, 장담했다. 31(1929-1933) 미 대통령 후버 (Herbert Hoover)의 표현을 빌리자면, ‘금주법은 고상한 동기와 사회 전반에 영향을 줄 목적으로 시작된 위대한 사회경제적 실험이었던 것이다. 이리 보면, 금주헌법은 변한 사회 풍조를 인식,아니 애써 외면했던 시대착오적 실험이었다 싶어, 아주 가끔은 금주헌법이 1900년대 말에 시작되었다면 어땠을까?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여하튼, 1920 117일에 금주헌법이 발효되자, 미 전역에서 술을 쏟아 버리고 양조기구를 두들겨 부시는 사진이 자주 매스컴에 보이고, 술집들은 문을 닫는 등  알코올 소비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옳커니!!’ 도 잠깐, 무언가 낌새가 이상하다.  금주법 이전에는 주로 남자들이 술집에 모여 술을 마셨는 데, 이제는 집에서, 엄마는 부엌에서 술병을 씻고, ….아들은 포치에서 경찰이 오나 망을 보는 등, 온 가족이 동원되어 간단히 밀주를 만든다. 이렇게 만든 알코올을 친구들과 집에서, 공원에서, 식당에서 삼삼오오 모여 즐긴다. 여기에서 끝났을까? 물론 아니지! 만든 술을 돈 받고 팔기도 하고, 식당은 밀실을 만들어 불법 술자리를 마련하고, 등등. 그리하여, 첫 한, 두 해에 줄었던 알코올 소비는 다시 상승했다. 1925년에 14세 이상 미국인들의 1인당 알코올 소비량이 일년에 32갤런을 넘는다. 이렇게 1920년대의 미국은 금주법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알코올 소비가 가장 많았던 시기 (“the wettest”) 로 간주된다. 그 많은 알코올 수요를 가정에서 재미삼아 만든 밀조가 담당했을까? 그것도 물론 아니다.

 

여느 도시나 마찬가지로 1920년대에 시카고에서 술은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일반 시민들은 금주법을 어기는 범법 행위를 스포츠인 양 즐겼고, 1924년에 시카고 시내의 15개 양조장은 24시간 풀 가동을 하여 시카고의 10,000여개의 선술집 (speakeasy), 수도 없이 많았던 불법 술집 (blind pig) 7,300 곳의 의료용 알코올 취급 약국에 별 차질없이 알코올을 대고 있었다. 어디 그 뿐일까? 미국 내의 다른 주에서, 캐나다에서 밀주를 몰래 (?) 반입하여 판매하는 사업이 큰 수익을 내기 시작하자 조직범죄 그룹  (gang)의 밀조 시장 독점을 둘러싼 폭력 사태가 빈번해진다.  그리고, 당연히 알코올 가격이 급상승했다. 그래도 정부의 세금 수입은 급감한다. ? 불법 사업이니 세금 부과는 당연히 없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놀랍게도, 시카고의 성당과 교회 지하실은 불법으로 밀조한 술의 은닉처로 쓰였고, 시카고 경찰국장 핏츠모리스 (Charles Fitzmorris)는 시카고 경찰의 60%가 밀주 조직에게서 정기적으로 뇌물 상납을 받고 있어 밀조 업자 처단?  불가능!” 하다는 보고서를 냈고 1913-1923년과 1927-1931년에 시카고 시장을 지낸 톰슨 (William Hale “Big Jim” Thomson)은 범죄 집단의 밀조와 판매를 공공연히 묵인했다. 뇌물을 열심히 챙긴 정치가들이 내어논 핑계는Volstead Act (금주헌법 시행을 위한 연방법)로 마련된 연방 정부가 제공하는 예산은 금주법을 시행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불법 술집 단속을 하던 경찰이 단속 후에 같이 술을 즐기는 등 웃지 못할 모습도 수 없이 포착된다. “세상에나 어쩌다가 이 정도?”

 

이렇게, 사회 전반이 금주 헌법을 공공연히 어길 수 있었던 경제적 이유가 있다. 1921년에 아주 잠깐의 경제 불황을 겪은 미국은 곧바로 불황을 벗어나1929년 말 뉴욕 증시 폭락까지 줄곧 경제가 번창하였다. 그래서, 미국의 1920년대를 경제 대번영의 시기 (the Roaring ‘20s)”라 부른다. 시카고에는 일자리가 넘쳐났고 노동 임금도 상승되니 노사 분규는 가뭄에 콩 나듯했다. 산업 시장 경제가 미국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1920년대 시카고에서의 일반 노동자들의 경제적 삶은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전국 철강의 17%와 라디오의 33%가 시카고에서 생산되었으니까. 주머니가 두둑하니 천정부지로 치솟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알코올 수요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알 카포네(Alphonse “Al” Capone)의 변론, “내가 한 것은 대중들의 요구에 응한 것뿐누군가는 대중들을 해갈시켜 주어야 하는데, 나는 왜 안되지? (All I do is to supply a public demand… somebody had to throw some liquor on that thirst. Why not me?” 맞는 말이네!’ 싶어진다.

 

 또한, 1922년에 뉴올리언스에서 시카고로 옮겨온 루이 암스트롱 (Louis Armstrong)이 베니 굳만 (Benny Goodman)과 함께 시카고 재즈 전설을 이루며 시카고를 ‘radio-capital’로 만들었고, 심해져 가는 시카고강 의 트래픽 해소를 위해 현재의 미시간 애배뉴 다리가 1920 514일에 화려한 개통식을 여는가 하면, 1926 5 8일에는 시카고의 첫 번째 비행장 미드웨이 비행장’ (원래 명칭은 Chicago’s Municipal Airport)이 문을 열어 민간 항공 시대가 시작된다. 경제 호황이 가져온 것이 자동차의 대중화이다. 기록에 의하면, 시카고의 개인 자동차 등록 차량 수는 1920년에 9만대에서 1929년에 4십만 대로 증가하여, 주택가에도 주유소와 신호등이 설치되었으며, 자동차 수리공이 미래의 직업으로 각광을 받았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 하였던가? 1920년대에 시카고에서 시도된 희한한 세차장 사진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경제는 흥청대고, 자동차가 대중화되니 시카고시의 지리적 경계가 확장되었고, 시카고 생활권의 반경이 넓아진다. 또한, 개인 주택 건설 붐이 뒤를 잇는다.  시카고스타일 방갈로(Chicago style Bungalow)는 이 시기에 애용된 개인주택 스타일로, 시카고의 거의 모든 지역에, 특히 남서지역과 링컨팍 북쪽 지역에 많이 건설되었다. 경제 번영이 가장 눈에 두드러진 곳은 시카고 다운타운이었다. 경제적 부가 쌓여가니, 비싼 다운타운에도 빌딩 건설이 붐을 이룬다. 세계에서 가장 큰 상업 빌딩이었던 머천다이스마트 (Merchandise Mart),  3천개의 객실을 갖춘 스티븐슨 호텔 (후에 콘래드 힐튼), 트리뷴 빌딩 등 지금도 건재한 많은 빌딩들이 1920년대에 시공, 완공되었다.  이 모든 경제 호황을 뒷받침한 것은 증가하는 인구로서, 1929년 말 시카고 인구는 드디어 3백만 명을 넘는다.

 

이렇게, 1920년대의 미국에서는 경제 번영과 금주법이 상부상조 (?)하며 준법 정신과 공공도덕 정신을 갉아먹었다. 로컬 정부는 더 썩어갔고 연방 정부는 예산 부족을 내세워 불법 행위를 수수방관했다. 기승을 부리는 폭력? 그거야 조직 범죄 그룹 간의 폭력이지 묻지마 폭력은 아니니 내 알 바 아니지! 자라나는 세대들의 가치관은 어찌 되었을까? 1920년대에 시카고에서 가장 센세이셔날 했던 재판을 통해 알아본다.   

 

1924 521 14살의 Bobby Frank가 자신의 집 근처에서 실종되고, 이튿날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범인들이 쓴 $10,000의 몸값 요구 노트에 사용된 타이프라이터와 시체  발견 장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안경을 단서로 범인을 잡고 보니, 켄우드지역의 재벌가 자녀로 시카고 대학교 학생인 19살의 Nathan “Babe” Leopold 2세와 18세의Richard “Dickie” Loeb이었다.  부유한 부모가 애지중지하는 가정, 앞 길도 창창한데, 왜 이런 일을 벌렸지?  두 사람은 담담한 어조로, 순전히 완전 범죄, 살인의 짜릿함을 느껴보려고 범행을 저질렀고 피해자 Frank는 그저 지나가는 행인이었을 뿐이었다고 고백하여 아주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금주헌법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 상황을 보자면: 금주 헌법에 대한 반대 여론은 초기에는 작게, 재미삼아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직적이 되어갔고, 철저한 금주운동가 후버 대통령이 1932년 재선에 실패하면서 정치 수면 위로 급부상하였다. 1933125일에 펜실베니아, 오하이오와 유타 주가 21차 헌법 수정안을 비준하자 곧바로 그날로 금주 헌법이 폐지된다. 그날 밤에 시카고 팔머하우스 바에서 밤새도록 열린 축하 파티에는 남성만큼이나 많은 수의 여성들이 다녀갔다는 바텐더의 일기가 남아있다.

 

[사족]: 부모들의 막강한 재력으로 그 당시 최고 변호사 Clarence Darrow의 변호를 받은 Leopold  Loeb이 사형 선고를 받지 않아 시카고에서는 무조건 돈!’’이라는 인식이 굳힌다.  Loeb 12년 후 감옥 안에서 다른 죄수에 의해 살해당했고, Leopold 33년을 복역하고 1958년에 출소하여 푸에르토리코로 이주, 그곳에서 1971년에 자연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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