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호 목사 / 포항제일교회>

 

(**영화 “HUNT” – 스포 있습니다. 영화 안 보신 분들은 읽지 마세요.)

 

“나쁜 놈들하고 어울리지 마!”

 

고문을 일삼는 안기부 간부가 딸 같은 대학생들에게 운동권 친구들, 나쁜 놈들 같으니 어울리지 말라 한다. 말이 안되는 소리인데,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납득이 된다. 그 사람은 배신자였고, 배신자였는데 좋은 사람이었다.

안기부 조직 내에 대통령을 죽이려는 자가 있다. 적과 내통한 그 놈을 찾기 위한, 치열한 대결과 서스펜스로 영화가 진행되지만, 결국 누가 그 놈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미 관객은 그 사람의 삶을 들여다 보았고, 그가 좋은 사람인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비정한 고문과 작전을 진행하면서도 언뜻 언뜻 인간에 대한 사랑, 불의에 대한 순수한 분노를 보여 주었다.

 

나의 경우, 결정적으로 설득된 장면은 주인공이 대학생들에게 흰 밥을 퍼주는 장면이었다. 시위하다 잡혀 간 대학생들, 안기부차장이라는 빽으로 빼내주고 자취방에 들여다 놓고, 이 주인공은 밥을 퍼준다. 허세로라도 혼을 내고 보낼 수 있는 대목이다. 밥을 먹는다면 퍼야 하는 것은 멀쩡하게 팔다리 있는 대학생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앉아서 쉬고 있고, 안기부 차장은 밥을 푼다. 예사롭게 볼 수 없는 장면이다. 밥을 퍼주는 손이 나쁜 손일리는 없다. 흰 밥을 퍼주는 마음은 그 밥처럼 새하얗지 않을까? 관객은 이미 설득 당해 버렸기에, 그 사람이 어떤 이들과 무슨 일을 도모해도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게 된다. 

 

이정재와 정우성의 대결은 볼만하다. 알 파치노, 로버트 드 니로가 대결한 1995년 작,  “HEAT”를 생각나게 한다.  제목도 비슷하다. 총질하는 영화를 보고 감동 받기는 그 만큼 오랜만이라는 얘기다. 영화의 만듦새와, 액션의 육중함, 주조연들의 연기는 액션의 전설인 그 영화를 넘어선다. 써스펜스는 누가 나쁜 놈일까에서 주인공들의 선택으로 넘어간다. 과거의 선택을 수긍하게 하는 힘은 아쉬웠지만, 현재의 선택에 긴장하며 몰입하게 하는 힘은 압권이었다.

 

역사적 사건들을 조각삼아 허구를 만들어 가는 솜씨도 훌륭했다. 역사는 거침없이 흘러가는 것 같지만. 그 사이 사이에 수많은 선택의 여지를 허용한다는 사실을 배운다. 전두환은 아무런 선택이 없는 존재 , 인형을 가져다 놓아도 되는 배역으로 나온다. 끝까지 고민하며 자신의 길을 선택해 가는 것이 인간의 길이라면, 인형이나 로봇으로 대체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 형벌이 아닐까? 전두환은 충분히 벌을 받았다. 이 영화에서는!

 

대척점에 서 있던 두 사람이 결국에는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함석헌이 말한 “세상이 다 너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너 뿐이야라고 믿어 주는 사람”, 오랫 동안 우정을 나눈 사이가 아니라, 서로 총을 겨누던 관계에서라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두 안기부 간부에서, 자기 팀의 사활을 걸고 싸우는 두 플레이어로, 조직을 배신한 두 반역자로, 결국에는 두 사람의 휴머니스트로 이 영화는 주인공들의 정체를 바꾸어 간다. 그 멀고 험한 길에 관객을 이끌고 가는 데에 성공한 영화이다. 둘 다 출중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주인공은 마음만 먹으면 자신이 가진 정보력으로 상사를 갈아치울 정도의 능력과 배포, 기민한 판단력을 갖추었다. 뭘 해도 인정받고 성공할 사람들이다. 그러나 약점은 있다. 휴머니스트라는 것이다.

 

역시 이 세상은 인간의 마음을 갖고 살기는 힘든 곳이다. 그러나, 어디엔가 진심을 알아 주는 이가 있겠거니 하고 살 수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 존재가 하나님이라면 그는 믿음의 사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