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환 목사 / 시카고 기쁨의 교회>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서리 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겠습니다.
- 나태주, <11월>
10월의 마지막 날이 되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노래가 있지요. “지금도 기억하고 있나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이 날이 되면 라디오에서 꼭 흘러나오는 노래입니다. 제목은 <잊혀진 계절>. 아마 떨어지는 낙엽과 이별이 가을을 잊혀진 계절로 느끼게 한 듯 합니다.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헤어져야 했던 그 사연이 궁금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어쩐지 공감이 되는 건 그 날이 ‘시월의 마지막 밤’이기 때문 아닐까요?
10월 31일이 되면 이 노래가 생각나듯이,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나태주 시인의 시 <11월>이 다시 찾아옵니다.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엔 차마 아까운 시간” 11월. 지나간 10개월이 아쉽지만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온 시점이고, 남은 한두 달도 차마 아까워 버리지 못합니다.
늦가을 서리 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는 장미는 못 다 이룬 사랑이려나요? 그래서 낮이 조금 더 짧아진 이 계절에 시인은 더 그대를 사랑하기로 합니다. 남은 시간을 후회가 아니라 사랑으로 채워야겠다는 다짐이겠지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감지한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
예수님에겐 그 때가 11월이었나 봅니다.
--2022년 11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