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준 목사 / 두란노 침례교회>
안녕하세요, 형제님.
오늘은 새해를 맞으며 나누었던 설교 내용을 편지로 전하고자 합니다. 새해를 맞는 형제님께도 도전이 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오늘 본문 사도행전 9장 18절에서 22절 사이를 보니 “즉시”라는 단어가 두 번 등장합니다. 먼저 18절을 보니 사울의 눈을 가리고 있던 비늘 같은 것이 “즉시” 벗어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늘이 벗겨지기 전까지 바울은 사흘 동안 먹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했습니다. 다메섹으로 오던 중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바울의 육신에 생긴 증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보내신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기도하자마자 그의 눈을 가리고 있던 비늘과 같은 것이 그 즉시 사라지고 만 겁니다.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을 엿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선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즉시, 이루십니다. 다시 이 사건을 깊이 묵상해 볼까요? 바울의 눈을 덮고 있던 비늘은 하루, 또는 이틀이 아니라, 그렇다고 일주일이나 일년도 아닌, 삼 일만에 벗겨졌습니다. 그 삼 일은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을 그 누구도 당기거나 늦출 수 없는 겁니다. 또한 비늘을 벗겨내는 방법도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바울은 자기 힘으로 비늘을 벗겨낼 수 없었던 겁니다. 하나님께선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즉시 이루시는 겁니다.
여러분, 기도하고 있는 제목 중에 한 해가 지나도록 아직 미해결된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들이 있습니까? 그래서 마음이 아프고 힘든 분들이 계십니까?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 제목의 실현 방법과 때는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님을 마음 속에 새겨두시기 바랍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지금도 여러분의 기도를 듣고 계시다는 사실만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는 구하는 것을 구할 때까지, 찾는 것을 찾을 때까지, 두드리고 있는 문이 열릴 때까지 흔들림없이 기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중에 기도 응답의 축복을 넘치게 누리게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20절을 보니 두 번 째 ‘즉시’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번에 등장하는 ‘즉시로’는 바울의 행동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눈에서 비늘이 벗겨져 앞을 볼 수 있게 되고 음식을 먹은 후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자마자, 바울은 즉시로 회당을 찾아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이 다메섹을 방문한 본래 목적은 예수를 믿는 성도들과 교회들을 박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보는 바울의 시각이 100% 바뀌었습니다. 그 바뀐 시각을 즉시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겁니다. 바울이 이렇듯 즉시로 ,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자신의 변화된 신앙관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의 삶을 빌립보서 3장에서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삶”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추구해야 할 삶의 푯대를 즉시로 바꾼 바울은 죽는 날까지 변함없이 그 목표점을 향해 달려갑니다. 참 놀라운 삶입니다. 비결이 뭘까요? 바울은 빌립보서 3장을 통해 확실한 비결 한가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 비결은 바로 뒤, 즉 과거에 한 일을 잊어버리는 겁니다. 과거에 한 일들을 즉시 잊거나 버리지 않으면 앞으로 달려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첫 번 째로 즉시 버려야 할 것은 죄입니다. 바울의 경우, 주님을 모르던 시절 성도들을 박해하고 교회를 없애려고 날뛰던 일을 즉시 잊어야 했습니다. 바울은 이 끔찍한 죄를 주님께 회개하고는 즉시 잊어버렸습니다. 그러자 믿음의 경주를 감당하는 바울의 발은 가벼워졌습니다.
사단은 종종 우리가 이미 회개한 죄를 끄집어내서 우리의 믿음의 경주를 방해하곤 합니다. “넌 이토록 부족하고 나쁜 놈이야”, “그런 주제에 뭘 한다고 그래”, 이런 식입니다. 이런 사단의 계략에 절대 말려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죄는 무조건 그 자리에서 회개하고 즉시 잊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앞만 보고 푯대를 향해 부지런히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내년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해로 만드시길 바랍니다.
두 번 째로 즉시 버려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과 충돌하는 나의 뜻입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니 바울은 소아시아에 복음 전할 뜻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마게도니야의 복음화에 있었습니다. 잠시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동안 바울의 사역은 진척이 없었습니다. 힘만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성령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게된 바울은 소아시아 복음화라는 자신의 뜻을 그 즉시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바울의 앞길은 다시 확 열렸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엘리사를 자신의 후계자로 불렀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엘리사는 그 즉시 소를 몰던 도구를 부수어 불을 피운 후 소 두마리를 잡아 그 불에 구워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자신의 과거 일을 즉시 정리해버린 겁니다. 엘리사는 그후 큰 선지자가 되어 하나님의 귀한 도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자신의 뜻을 즉시 버릴 수 있는 삶이 되어 믿음의 형통함을 누리게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세 번 째로 즉시 버려야 할 것은 이미 이루어놓은 업적입니다. 내가 뭔가를 해냈다는 자부심은 교만과 안주의 마음을 키워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 유혹을 잘 이겨냈습니다. 그래서 이미 이루어놓은 선교 업적에 안주하지 않고 평생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런 면에서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왕들이 전쟁에 출정해야 할 때에, 다윗은 왕궁에 머물러 게으름을 피웠습니다. 당시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로 전쟁에서 이미 많은 승리를 거두었고, 통일 왕국을 구축한 후였습니다. 이미 쌓은 업적으로 인해 긴장이 많이 풀렸던 겁니다. 결국 다윗은 그 게으름 속에서 남의 아내를 범하는 죄를 짓고 맙니다. 그후 다윗의 삶은 내리막길을 걷게됩니다. 한순간의 방심이 다윗의 믿음의 경주를 방해하는 덫이 되고 만 겁니다.
우리는 주님 만나는 그 순간까지 달려가야 할 인생들입니다. 이미 이루어 놓은 업적에 마음이 매여있어서는 달려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전에 한 일들은 즉시로 잊어버리시길 바랍니다.
이제 새해가 다가오려 합니다. 새로운 소명들도 가득한 새로운 출발점에 선 겁니다. 이 출발선에서 즉시 뒤엣 것들은 잘라내버리기 바랍니다. 금년에 해결하지 못한 죄들을 지금 즉시 회개하고 잊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것과 충돌하는 자신의 뜻을 지금 즉시 버리기 바랍니다. 금년에 이룬 업적들도 지금 즉시 깨끗이 잊어버리기 바랍니다. 그런 후 하나님께서 열어놓으신 새해에 새 장(chapter)을 향해 힘차게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형제님, 새해의 하루 하루가 하나님 부어주시는 축복으로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그림 설명:
Bartolomé Esteban Murillo. The Conversion of Saint Paul (c.1675-1680) oil on canvas. Acquired by Charles IV of Spain; now in the Prado Museum in Madrid.[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