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용 집사>
“지혜가 우매보다 뛰어나지만, 이 또한 죽음 앞에서 사라지고 기억되지 못합니다. 해 아래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고 모든 게 헛될 뿐입니다” (전도서 2: 12-17)
저는 집사람이 갑자기 아프고 소천한 후에 모든 나의 신앙의 생각과 관점이 달라졌습니다. 그것은 삶은 고난, 더 나아가서 “고통 신학”이 된 것이지요. 고통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신비이고, 고난은 성숙을 위한 피할 수 없는 장애 코스입니다. 고난과 고통은 사촌간이며 인생에 불현듯 찾아오는 것이 바로 고난입니다. 누구의 책임도, 누구에게 추궁하거나 묻거나 따질 수 없는 것이지요. 그저 당할 뿐, 그리고 버티어 내는 것 외엔 할일이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 그 결과도 우리 손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운명은 하나님이 정하신 시와 때입니다. 한치의 오차도 양보도 없는 정확함. 이것을 은혜로 받아들이게 될 때 나의 삶이 비로소 회복됩니다. 저는 아직 이 단계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왜냐고요? 아직도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지난 세월의 아련한 기억이 나의 마음 곳곳에 남아있기 때문이죠.
나의 가야할 길 앞에서 “걱정마라. 너의 갈길은 내가 안다. 나에게 다 맡겨라. 내가 책임진다. 네가 어떤 길을 가든 그것은 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 진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요? 인간이 느끼는 기쁨과 슬픔은 무엇일까요? 오늘의 슬픔이 내일의 기쁨이 될 수 있고 그 정반대의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시는 참 기쁨을 소망합니다. 죽음 앞에서 조차 슬픔이 기쁨으로 승화되는 신비함의 이상한 확신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해아래 하던 나의 모든 수고와 땀이 결국은 헛된 일이고 바람을 잡는 무익한 삶이란 것을 깨달을때 쯤이면 아버지 본향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2022년 11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