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용 집사>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고후 1:6-7)
시련과 슬픔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 것일까?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 앞에 어떻게 반응하며, 상처를 싸매고 눈물을 닦아 주는 수고, 그 값비싼 대가를 나는 알고 있을까? 고통스럽고 어려운 인생을 살아온 이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인생의 그릇이 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고 큰 손실을 겪으며 대낮에 어둠을 만나야 했던 시간, 이런 모든 과정을 감당해야 합니다.
나에게는 앞으로 어떤 향기가 흘러 나올 수 있을까? 고난의 안쪽에 담겨있는 가능성은 하나하나의 덕목과 성숙함, 남을 도울 능력으로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이 또한 빨리 지나가리라고만 기대하고 한시 바쁜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지요. 이 고난에서 많은 것을 얻게되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노래가 거룩하게 울려퍼지고 희망과 용기와 기쁨이 되는 복된 영혼의 아름다운 삶은 고통과 슬픔에서 나옵니다. 그분의 은혜가 나한테 족한 삶으로 기쁨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일주일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텅빈 멍함 속에 깃들인 시간입니다. 월요일에는 큰애네와 함께 하와이로 날아갑니다. 사돈네가 호주에서 하와이로 오기 때문이죠. 팬데믹으로 3년간 만나지 못했습니다. 매년 가족을 이끌고 휴스톤에 사는 아들을 보러오곤 했지요. 사돈네는 무난하고 좋으신 분들이십니다. 중국인 3세이신데 동양인의 사고와 서양의 방식이 잘 맞습니다.
로탄에 와서 일주일을 지내며 다이빙을 같이 하니 서로들 아주 친해졌습니다. 먹고 마시고, 그리고 나누는 공통의 대화 속에 강한 동질감을 느낀 것이지요. 계속 이런 만남을 가져야 겠습니다.
--2022년 12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