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준 목사 / 두란노 침례교회>
안녕하세요, 형제님.
오늘은 ‘축복’이라는 단어에 집중해서 함께 묵상해볼까 합니다. 먼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았습니다. ‘크리스천에게 참 축복이란 무엇일까?” 이 질문 앞에서 깊이 생각하는 동안 질문은 곧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 가장 큰 축복을 누린 사람은 누굴까?’ 그 인물을 찾아내어 그의 삶을 분석하다보면 답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인물들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의 삶 속에서 항상 만족을 누렸던 인물은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바로 바울입니다.
당장 반대할 분도 있을 지 모릅니다. 그가 선교 하는 동안 겪었던 수많은 고난과 박해를 생각해보라고. 기독교를 반대하는 유대교인들에 의해 돌로 맞아 죽을 뻔도 하고, 이방인의 모함에 의해 채찍에 맞고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배가 파선되어 죽을 고비도 넘기는 등 수없이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바울을 어떻게 최고의 축복을 누리던 사람으로 꼽을 수 있느냐고 조목조목 이유를 대며 반대할 수도 있습니다. 그의 삶을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그렇게 평가할 수 있는데, 정작 바울 본인의 고백은 다릅니다.
바울이 직접 쓴 빌립보서를 읽어보면 “난 어떤 환경 속에서도 자족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이 편지를 로마 감옥에서 쓰고 있는데, 편지 전체가 ‘기쁨’의 분위기로 가득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 쓴 편지에서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주 성도들에게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하는 사도였습니다. 그러니까 바울 자신의 삶이 늘 기쁨과 감사로 넘쳤던 겁니다.
성경을 아무리 뒤져봐도 바울처럼 어떤 환경에서도 자족하고, 또 항상 기뻐하고 어떤 일에도 감사했던 인물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따라서 우리는 최고의 축복을 누렸던 인물로 바울을 서슴없이 꼽을 수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형제님, 하나님께서 과연 어떤 축복을 그에게 부어주셨기에 바울은 늘 기뻐하고 항상 감사해 하며 또한 언제나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바울은 하나님의 축복이 시작된 순간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순간을 사도행전과 자신이 쓴 편지 곳곳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로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순간이었습니다. 그 만남의 과정에서 예수님은 바울에게 큰 소명을 주셨습니다. “너는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 이름을 전하기 위해 택한 나의 그릇이다.” 교회를 없애고 성도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천방지축 돌아다니던 자신을 만나주시고 구원해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그 위에 주님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까지 주신 겁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할 그릇으로 선택받은 사실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소명을 통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와 믿음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일꾼으로 불러주신 축복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고린도전서15장에 아주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절 사도로 불러주셨습니다. 제가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전 그 은혜가 감사해서 다른 사도들 보다 더 많이 충성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자신을 선택해서 일을 맡겨주신 은혜, 이 축복 때문에 늘 기뻐하고 감사하고 행복할 수 있었던 겁니다.
가장 축복된 삶을 누린 바울의 고백을 통해서 성도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그릇이 된다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형제님은 바울의 이 심정을 금방 이해하실 겁니다. 직장에서 아무 일도 안하면서 월급을 받는 것과, 주어진 일을 열심히 감당하며 월급을 받는 것 중 어떤 쪽이 더 큰 축복일까요? 얼핏 보기엔 일 안하고 빈둥대면서도 월급 받는 쪽이 훨씬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곧 알게 됩니다. 상사의 신임 속에서 주어진 Project를 맡아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들이 훨씬 활력이 넘치고 행복지수도 더 높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믿고 중요한 일을 맡겨준 상사의 은혜에 감사해서 기쁨을 가지고 충성하다보면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 기회가 생기고, 그렇게 달려가다보면 언젠가는 기업의 오너의 뜻을 직접 듣고 나눌 수 있는 정말 높은 자리에까지 승진할 수도 있게 되는 겁니다. 또한 그렇게 직위가 올라가면 회사가 가지고 있는 재원을 더 많이 사용할 수 있는 권한도 생기게 됩니다. 그러니 상사의 신임 속에서 주어진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해나가는 사람이 더 큰 축복을 누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형제님,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처럼 주님이 주신 소명을 이루기 위해 주님과 동역하며 달려가는 성도가 축복된 성도인 겁니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것은 교회의 성도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이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열려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이 자신이 아들처럼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쓴 편지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습니다.” 여기서 큰 집이란 교회를 말합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큰 집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작은데요? 아니 지금 말씀드리는 교회는 이 땅의 모든 교회를 다 합한 universal church 즉 우주적 교회를 뜻합니다. 그 교회 안에는 여러 다른 재료로 만들어진 온갖 종류의 그릇들이 있다는 겁니다. 금그릇, 은그릇, 나무 그릇, 질그릇 등 다양합니다. 여기서 그릇들은 성도들을 뜻합니다. 그런데 본문의 촛점이 그릇의 재료에 있질 않습니다. 큰 집이 세워지는데 서로 다른 모양과 재질의 그릇들이 다 필요하다는 사실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선 모든 성도들을 다 교회를 세우는데 필요한그릇으로 불러주신 겁니다. 그저 각자의 용도가 다를 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선 모든 성도들에게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겁니다. 바울이 누렸던 축복을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주신 겁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이 우주에서 가장 거대하고 안정적인 기업입니다. 형제님, 기업이라는 단어를 이상하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성경 안에서 기업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계시니까요. 가장 거대하고 안정적인 기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첫 째 이 기업의 오너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둘 째 이 기업은 영원히 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가장 거대하고 안정된 기업에서 성도들은 자신의 은사에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할 수 있게된 겁니다. 세상의 기업체는 규모가 클수록 오너가 직접 사원을 선발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그런데 우주에서 가장 큰 기업인 교회의 오너이신 주님께서는 성도들을 직접 선발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 나라의 백성, 즉 성도가 되어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기업에서 일한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인 겁니다.
형제님도 예외가 아닙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라는 기업을 위해 직접 선택하신 축복의 사람인 겁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고 이 축복을 통해 늘 기쁨과 감사와 자족의 삶을 만끽하는 복된 삶이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다음 편지를 드릴 때까지 하나님의 축복으로 가득한 하루하루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