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용 집사>
마 16 :1-20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베드로의 고백을 묵상합니다. 나의 고백은 무엇인가요? 주는 나와 동행하시며, 나의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과의 동행은 내 안에 계시며, 나의 손을 꼭 잡고 계신다는 의미이죠.
어제 38살된 딸애가 먼저 천국에 입성한, 한 지인을 만났습니다. 마치 동병상련의 처지인듯 신앙과 상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움에 대한 마음은 참고 견디는 것일뿐, 다른 방도가 없는 것 같습니다. 왜 좀더 시간을 주시지 않고 데려가신 것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 그리고 섭섭함이 대화에서 묻어 나왔습니다.
저는 그것을 하나님의 주권적 부르심이라고 부릅니다. 그럴 때는 내 자신이 침묵과 숨어 계시는 하나님의 속성 앞에 서게 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든, --심지어 주의 일을 하는 사역의 현장에서도-- 상관없이 시간과 장소, 그리고 상황에서 강행 (?)하시는 하나님의 무 자비 (?)하심으로 이뤄 가십니다. 그저 끌려 갈뿐이죠. 인생은 세상이라는 넓고 다양한 무대에서 각자 맡은 역할의 역량으로서의 주어진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나에게 정해진 운명에 대한 화두나 상대방과의 비교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대신 나의 인생의 궁극적인 것은 질문이 아니라, ‘고백’이어야 합니다. 나의 참을 수 없는 질문의 가려움을 넘어서,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이 나의 갈 길이란 것을 오늘 본문은 나에게 제시합니다.
--2023년 3월 3일
**그림 설명: 피에트로 페루지노 (Pietro Perugino), "The delivery of keys" (!482년경). 시스티나 대성당, 바티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