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환 목사 / 시카고 기쁨의 교회>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라
심장 저 깊은 곳으로부터
눈물 냄새가 차오르고
이내 두 눈이 젖어온다
흙은 생명의 태반이며
또한 귀의처인 것을 나는 모른다
다만 그를 사랑한 도공이 밤낮으로
그를 주물러서 달덩이를 낳는 것을 본 일이 있다
또한 그의 가슴에 한 줌의 씨앗을 뿌리면
철 되어 한 가마의 곡식이 돌아오는 것도 보았다
흙의 일이므로
농부는 그것을 기적이라 부르지 않고
겸허하게 농사라고 불렀다
그래도 나는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면
눈물샘 저 깊은 곳으로부터
슬프고 아름다운 목숨의 메아리가 들려온다
하늘이 우물을 파놓고 두레박으로
자신을 퍼 올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 문정희, <흙>
누군가 (무언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건 그저 그 이름을 발음하는 걸 의미하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인식하는데 첫 번째 요소가 ‘이름’이지요. 하여, 이름은 곧 ‘정체’(identity)입니다. 명명, 혹은 호명의 행위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김춘수의 <꽃>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흙의 이름이 흙인 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요. 흙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품습니다. 그야말로 ‘생명의 태반이며 또한 귀의처'이지요. 도공은 흙을 주물러서 달덩이같은 항아리를 만들어내고, 농부가 씨앗을 뿌리면 흙은 한 가마의 곡식을 만들어 돌려줍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흙을 주물러 사람을 만드신 건 그야말로 ‘신의 한 수'입니다.
그래도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흙 흙 흙” 하고 발음하면 마치 어머니처럼 흙이 우리 눈물을 다 받아줄 것 같고, 그 많은 눈물 다 머금은 흙으로부터 ‘슬프고 아름다운 목숨의 메아리’가 “흙 흙 흙” 하고 들려오는 듯 합니다. 흙은 흙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어떨까요? 그리스도인이라는 새 이름을 받은 우리는 말입니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창 33:27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