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형제에게 보내는 편지 스물 여덟번 째

by skyvoice posted Mar 0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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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그릇.jpg

 

 

 

< 목사 / 두란노 침례교회>

 

안녕하세요, 형제님.

 

형제님, 그릇을 기울이면 그릇이 담고 있는 내용물이 흘러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차를 담고 있는 다기를 기울이면 차가 흘러나옵니다. 물이 들어있는 물통을 기울이면 물이 흘러나오고요. 너무나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릇은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물에 따라 가치가 정해집니다. 그릇에 비싼 보석이 담겨 있으면 그릇의 가치는 담고 있는 보석과 함께 상승합니다. 그러나 그냥 흔히 구할 있는 물건이 담겨있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입니다.

, 형제님, 이제 우리, 믿음의 성도들에게로 시선을 돌려보겠습니다. 바울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릇인데, 하나님께선 도대체 무엇을 담아두기 위해 우리를 그릇으로 택하셨을까요? 앞에서 말씀드린 방식으로 질문의 내용을 바꾸어보면, 먼저 믿음의 성도라는 그릇을 기울이면 무엇이 흘러나와야 할까요? 예수 그리스도가 흘러나와야 합니다.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볼까요? 우리라는 그릇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예수님만큼 값이 나간다고 답하셨으면 정답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우리라는 그릇을 채우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구원의 문을 여신 순간 이런 놀라운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 젖히는 순간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는 역할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젠 우리 믿음의 성도 사람, 사람이 하나님을 담은 그릇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를 기울이면 예수님이 흘러나오고, 또한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의 가치는 무한대로 치솟게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으니, 따라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마디로 우리는 예수님이라는 우주에서 가장 귀하신 분을 우리 안에 모시고 살아가는, 최고로 축복된 존재들이 겁니다.

 

보배를 지닌 그릇으로서 누리게 되는 축복을 보다 구체적으로 나누어볼까요?

먼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있게 됩니다. 바울은 믿음의 성도들을 질그릇, 나약한 존재로 표현합니다. 하지만 질그릇 안에 예수님의 능력이 담겨있음을 분명히 선포합니다. 질그릇에 불과한 성도들은 약해서 우겨쌈도 당하고 답답한 일도 당하고 박해를 받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지만, 안에 계신 능력의 주님께서 모든 어려운 환경을 이겨낼 있도록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빌립보에서 선교 사역을 감당할 , 바울은 아무런 죄도 없이 채찍에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질그릇과 같이 약한 바울은 우겨쌈과 답답함과 박해와 거꾸러뜨림을 고스란히 당한 겁니다. 하지만 바울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자신의 안에 계신 주님을 믿었습니다. 그때 바울 안에 계신 주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셨습니다. 터를 흔들어 감옥의 문을 여시고, 신비한 방법으로 사슬을 풀어 주셨습니다. 나아가 바울로 하여금 간수와 그의 가족을 구원받게 해주셨습니다. 자신의 안에 계신 예수님 때문에 바울은 승리할 있었던 겁니다.

 

이번엔 베드로의 예를 들어볼까요? 사도행전에는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 시간에 성전으로 들어가다가 앉은뱅이 걸인을 만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자신에게 구걸하는 걸인을 향해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내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외형적으로 베드로는 걸인을 도와줄 능력이 없었습니다. 재정적으로는 베드로도 걸인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겁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자신 안에 계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주님을 믿는 베드로의 믿음은 대단했습니다. 베드로가 지금 자기의 믿음을 선포하고 있는 자리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장소였습니다. 기도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 사람이 지켜 보고 있는 경우 군중의 눈치를 보며 잔뜩 위축될 있습니다. 이러다 안되면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이 믿음을 방해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기 안에 계신 주님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믿음으로 치유를 선포했을 ,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뛰는 기적이 일어났던 겁니다.

 

형제님, 우리도 바울과 베드로와 다를 바가 없는 믿음의 성도들입니다. 형제님과 안에도 살아계신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보배를 담은 질그릇들인 겁니다. 그러니 형제님도 자신 안에 계신 주님을 믿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어떤 상황이나 환경 속에서도 기죽지 않고 승리하는 2012 해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보배를 담은 질그릇이 누릴 있는 째의 축복은 바로 그리스도의 인격이 드러나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에서 당신의 인품을 온유함와 겸손함으로 정리해 주셨습니다. 물론 이외에도 주님은 완전한 (perfect) 인격을 지니셨습니다. 반면에 우리의 인격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가진 뒤틀린 인격 때문에 힘들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인격 때문에 스스로 상처받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며 살아갑니다. 후회도 많이 합니다. 그런데 내가 질그릇에 불과함을 깨닫고 인정할 ,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인품이 삶을 통해 드러나게 되는 겁니다. 이처럼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형제님, 바울의 변화를 볼까요? 고린도전서, 에베소서, 디모데전서, 3통의 편지를 통해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인격이 점점 겸손하게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발견할 있습니다. 가장 먼저 쓰여진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자신을 사도 가장 작은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다른 사도들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쓰여진 에베소서에선 자신을 성도 지극히 작은 자보다도 작은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젠 사도는 커녕 지극히 작은 성도와 비교해도 자신은 작은 자임을 고백하고 있는 겁니다. 시간적으로 가장 마지막으로 쓰여진 편지 디모데전서에서는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자신을 성도와 비교하지도 못합니다. 죄인들과 비교하며 그중에서도 괴수라고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자꾸만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바울의 인격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울은 자기 안에 계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시간이 갈수록 주님의 인격이 드러나는 삶을 있었던 겁니다.  

 

형제님, 자신의 인격을 고쳐보겠다고 스스로의 힘으로 노력하는 것을 이젠 그만 두시기 바랍니다. 아무 소용없기 때문입니다. 대신 “이제는 내가 아니라,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드러나시는 삶이 되길 원합니다”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형제님 안에 계신 주님께서 도와주실 겁니다. 그래서 2023년에는 더욱 주님의 인격을 닮은 삶을 누리게 되시길 바랍니다

 

다음 편지를 드릴 때까지 하나님의 축복으로 가득한 하루하루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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