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8 23:04

닛산 맥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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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맥시마.JPG

 

<김흥균 권사 / 하늘소리 발행인>

 

13년전 91년도형 닛산 맥시마를 남편으로부터 선물 받았다.

 

평소 속에 담은 관심과 사랑을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상도 사나이 남편은 둘째 아이를 출산한지 얼마 안되어 느닷없이 어느 차가 좋으냐고 물었다. 나는 지나가는 말로 "닛산 맥시마가 좋아 보이더라"고 대답을 했다. 그당시 우리는 유햑생활을 했기 때문에 나는 별 기대 없이 무심코 대답을 했다. 그후 남편은 난데없이 운전 면허를 취득하라고 성화를 부렸다. 비용도 적지 않게 들터이니 짬짬이 남편에게 배우겠다는 나를 우격다짐으로 운전학교에 등록시켰다. 운전 면허증이 채 마르기도 전, 남편은 퇴근시간에 맞추어 회사 파킹장으로 아이보리 칼라의 닛산 맥시마를 몰고 왔다.

어리둥절해 하는 나에게 타라고 했다. 입덧을 심하게 한 후 고생고생 아이 출산 후에도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를 할 줄 몰라 두고두고 잔소리를 듣던 남편은 나에게 깜짝 선물로 속마음을 접수한 것이다.

 

이런 연유에서인지 나는 이 차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다. 머플러가 깨져 투투투 둔탁한 소리를 내고, 내장 천이 아이보리 색깔이어서 때자욱이 꼬질꼬질했음에도 불구하고 차고에 번듯하게 자리잡고 있는 이 차를 보면 왠지 마음이 뿌듯했다.

더구나 둘째 아이는 자신의 출생 기념으로 아빠가 엄마에게 이 차를 선물했다는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졌다. 지난 3월 새 차를 구입해 이 차를 처분하려 하자 둘째 아이는 팔짝 뛰었다. 자신이 커서 이 차를 운전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냥 두었다. 그러다 보니 괜시리 보험료도 나가고 차 두 대의 차고인지라 아침마다 차를 빼려 오락가락하는 번거로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이를 설득했다.

"이 차 팔아서 고스란이 네 저금통에 교육비 명목으로 넣어 줄게."

아이는 심드렁하게 일종의 계약 조건을 내세웠다. 플레이트 넘버와 '닛산 맥시마'라고 디자인된 글자를 떼어 기념으로 둘 것, 그리고 차 전체를 사진 찍어둘 것 등이었다. 그러마 하고 카 세일 광고를 냈다.

광고를 내자마자 어느 사람이 사겠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틀고 말았다. 그 당시 힘에 벅찬 선물을 하느냐 허리가 휘었을 남편에 대한 생각도 생각이려니와 두 살 터울의 아이들을 태우고 쌓은 추억들이 이 차를 놓지 못하게 했다. 우유병을 쏟아 쿰쿰하게 찌든 냄새, 천장에 그려댄 낙서들, 두 아이 레슨 받는 시간을 쪼개 차 안에서 아이들에게 번갈아가며 한자 한자 읽어주던 동화책들, 주행하며 아이들과 단어를 주고 받기도 하고 차 안에서 먹일 것 먹이며 자란 두 아이들은 이제 13살, 15살이 되었다.

우리에게 이 차는 간이식당도 되고, 도서관도 되고 이동식 놀이공간도 되었다. 아이들도 이런 어릴 적 추억들이 가슴에 남는 모양이다. 아직도 잘 달려주는 이 차를 더 타겠다고 고집 부리는 나에게 새 차를 사라고 애교를 떤 아이들은 막상 새 차를 구입한 후 헌 차 타기를 꺼려하면서도 은근히 이 차를 사러 오는 사람들에게 시큰둥했다.

 

우린 이 차로 여행도 참 많이 했다. 어린 것들 싣고 뉴욕으로, 워싱턴으로, 미시간으로 씽씽 달렸다. 단 한번의 고장 없이 달려준 이 차가 고맙기만 하다. 더구나 이 차와 함께 아이들이 잘 자라준 것이 감사하다.

 

이런 추억이 미련으로 남으면서 조금 있으면 운전하게 될 큰 아이에게 넘겨줄까도 생각했다. 추억은 가슴에 담고 애착을 버리기로 굳게 마음먹고 또 다시 차를 팔기로 했다. 그후 한인 세탁소에서 일하는 히스패닉 아미고가 3백달러 계약금을 걸고 갔다. 계약을 하고 차를 가져가야 하는데 미수금이 모자라 함흥차사다. 차는 마음에 드나 쥐꼬리만한 돈이 없어 차를 찾아가지 못하는 아미고의 사정이 딱해 보였다. 몇 개월간 분할하라고 했으나 그 형편도 여의치 않은 모양이다. 결국 2개월간을 기다리다 계약금을 물려주고 아메리칸 드림을 꾸는 건실한 한인 가장에게 넘겼다. 유난히 추운 겨울날, 꽁꽁 언 손을 녹일 사이도 없이 툴툴 거리는 차 키를 받아든 이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이 이루어지길 기원한다.

시카고 추위를 처음 맞는다는 이들에게 얇게 걸친 자켓이 신경 쓰여 남편 회사에서 샘플로 만든 두툼한 셔츠를 남편에게 물을 사이도 없이 건네고 말았다. 남편은 남편대로 주유소에 슬쩍 나가 기름을 채우고, 꽁꽁 언 손으로 바퀴에 바람을 체크한 모양이다.

 

이 차를 타는 이에게 기쁨을 가득 실어 주고 싶었다. 맥시마와 함께 지녔던 우리의 행복한 추억이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것이 자식 키우는 부모의 심정일까?

 

***이 글은 김흥균 권사가 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 대우로서 2004년 2월 한국일보 데스크칼럼에 실렸던 글을 본지에 실었고, 아래의 유튜브 동영상은 동화구연가이신 이지현 권사의 음성으로 녹음, 제작한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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