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강 이야기

by skyvoice posted Jan 1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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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렬 / 문필가>


옛말에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더라는 말이있다. 물론 옛날이니 그랬지 요즘 그런 시집살이하고 살 여성들은 없을 것이다. 행여 마음 상할까 며느리 눈치를 보는 세상이니 말이다. 여권이 많이 신장되었음을 몸으로 느낀다.
요즘세상에는 대부분 집안에서 수세식 화장실을 설치하고 편리하고 기분좋게 이용하지만 불과 몇십년 전만 하더라도 처가와 뒷간은 멀어야 한다는 법이 묵인되고 통용되던 시절이었다. 화장실이 멀리 떨어져 있으니 거짓말을 보태어 말을 한다면 한나절을 걸어야 된다는 시절이었다. 낮에는 그런대로 활동할 수 있으나 밤에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하려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캄캄하고 무섭고 더구나 여인의 몸으로서야........그래서 대부분 아녀자가 있는 방에는 이동식 간이 화장실인 요강을 들여놓고 간단한 해결을 보았다.  

어느 가정에 새색시가 들어왔다. 시부모님은 안방에 거하고 새색시는 윗방에 기거하게 되었는데 소변이라도 볼라치면 요강에 부딫쳐 울려퍼지는 오줌소리가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이불로 몸을 두르고 소변을 보는 일을 치르곤 했다. 맏며느리로 들어가
보니 시집에는 예닐곱살 되는 어린 시누이가 있었다. 시어머니는 저녁에 새신랑이 마실을 나가면 막내 시누이에게 "새언니 심심할테니 말동무도 해주고 언니와 재미있게 놀아라"하고 윗방으로 막내 시누이를 보냈다. 철없는 시누이도 살갑게 해주는 새언니가 먹을것도 잘 주고 이야기도 잘 해주니 새언니방에 가서 노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그런데 그렇게 잘 먹여주고 귀여워 해주었더니, 모처럼  요강에 소변이라도 볼라치면 꼭 "언니 나도 오줌 마려워"하고 낼름 먼저 요강에 올라 앉아서 내려올 생각을 안한다. 새색시는 오줌보가 터질 지경인데 시누이는 내려올 기색도 없고 강제로 내려 놓으면 울어 버릴테고.......친동생 같으면 쥐어박기라도 하련만, 작아도 잘 사귀어야할 시누이니 소변을 참느라고 얼굴에는 땀만 삐질 삐질 맺혀난다. 그렇게 한참을 앉았다가 소변도 안보고 내려오는 시누이는 "언니 나 오줌 안나와". ~그 주먹이 운다. 그시절에는 시누이와 올케는 이래 저래 앙숙지간이 많았는데 요강에 얽힌 재미난 얘기를 적어보았다.
한국에서는 매스컴에 요강에 대한 옛날 우리 조상 선조들의 지혜가 회자되면서 골동품 요강값이 무척 올랐다고 한다. 재미난 수수께끼 중에 이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강은 무슨 강인가?” 라고 물으면 그 답은 요강이라고 한다. 지금같은 추운 겨울 기나긴 밤에 나의 어릴적에는 요강에다 소변을 보고 깜깜한 밖의 어둠 속이 무서워서 겨울에는 어린애들이 대변도 보며, 어쩌다가 어느 집 아버지는 술을 많이 드시고 와서 속이 거북하여 요강을 양손으로 잡고 입을 넣어 여기에 토해내기도 하는 요강,  그러면 그집의 어머니(부인) "아이고, 아이고, 내가 이 웬수때문에 못살아, 못살아. 내가 이 화상때문에 내 명대로  못살아"하며 투덜대면서도 남편의 등을 두드려주는 정겨운 장면을 연출하게 해주는 것도 요강이 있기때문이었다.
이 요긴하게 쓰이는 요강, 한밤중에 윗목 방구석에 놓인 요강에 시원하게 쉬를 하던 기억은 나이가 지긋한 50대이상의 사람들은 다 갖고 있을 것이다. 그나마 이 요강이 없었다면 요즘같이 집안에 현대식 화장실이 있는것도 아니라서 잠자다 깨어서 소변이 마려우면 뒷간까지 가려면 캄캄하기도 하고, 겨울이면 춥기도 할뿐더러 무섭고 귀찮아서 난감할 때 이 요강은 얼마나 사람들에게 필요한 생필품이였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을 해보니 이 요강이란 게 있어 우리네 조상님들의 지혜가 참으로 훌륭했음을 느끼게 된다. 마당에 함박눈이 수북하게 쌓이던 그 춥고 긴 겨울밤이면 더욱 요긴한게 요강이었다.
이 요강이야말로 옛날에는 실내용 변기로서 이용가치가 대단했다. 요즘에 사는 세대들은 이것이 요강인지 한강인지 조차 모르며 살고 있지만, 한국의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처녀가 시집갈 때 놋요강이 빠지면 반쪽 혼수라며 입을 실쭉거릴 정도로 요긴한 혼수품이었다. 혼인을 한 각시의 신행길  가마 속에는 으례 필수적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요강이었다. 먼 길을 향해 시집가는 딸을 위해 친정어머니가 몰래 요강 속에 넣어둔 목화씨는 참으로 깊고 그윽한 모정의 징표이다. 가마를 탄 색시가 밖에는 자기를 메고가는 가마꾼들이 있는데 좔좔 소리를 내며 오줌을 눌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요강 속의 목화씨는 색시가 힘차게 쏟아내는 오줌 물줄기 소리를 죽여주는 역활을 톡톡히 해냈다.
옛 우리 나라 속담에 뒷간과 처가집은 멀리 있으면  있을수록 좋다고 했다. 안방 윗목에 슬그머니 큼지막한 질그릇이나 놋그릇 요강이 자리잡고 있어서, 요즘같은 추운 겨울밤 뒷간에 나가 엉덩이를 노출시키고 앉아서 아랫니 윗니 닥닥닥 부딪치고 떨면서 엉덩이 비비는 수고를 덜어 주었으니 이 얼마나 은근하고 고마우며 천연덕스러운 지혜인가? 한국의 요강만큼 우리 삶의 흔적을 많이 함축한 것도 흔치가 않다. 체면과 염치가 중했던지라 낮에는 누가 볼까봐 툇마루 밑에나 마루 후미진 구석에 잘 눈에 안띄도록 엎어 두지만 저녁의 부엌일을 마친 어머니는 요강단지를 방구석에 들여놔야 비로소 일과가 끝난다.
낮에는 모든 식구들이 다 사용한 요강을 농사철에 사용할 거름으로 모아놓고 커다란 오줌통에 갖다 소변을 쏟아붓고 빈 요강통은 볏집을 수세미 삼아 재를 묻혀서 박박 밀어서 닦아 물기를 빼고 마루 위에 엎어놓아 저녁밤을 대비한다. 이렇게 소변의 지린내를 없애고 깨끗이 닦아놓은 요강을 방구석 윗목에 들여놓는 일로 어머니의 바쁜 하루 노동의 일과는 끝을 맺는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요강이야말로 가장 솔직하고, 그래서 더욱 인간적인 우리네 가정의 필수품이었다. 자식들과 부모의 것이 뒤섞여 농작물의 거름이 되고, 그 모든 가족들의 오줌을 받아내는 요강이야말로 우리가 자랑하는 끈끈하고 벽이 없는 가족애의 시작과 끝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깜깜한 밤, 솜바지 고의춤을 내리고 요강단지를 달랑 들고서 볼일 보는 아버지, 허연 날 궁둥이 까고 앉는 어머니의 좔좔 소변을 보는 소리가 애들에게는 꿈결에 듣는 소리지만 거기에는 격식없는 진솔한 믿음과 신뢰가
배여있는 혈육간의 호패가 됐던 것이다.
옛날에 양반들은  유기에 백자, 청자는 물론 오동나무통에 옻칠까지 해서 썼는가 하면 요강을 닦고 관리하는 전담 머슴까지 뒀다고 하지만 지린 냄새 나는 오줌누기는 매한가지로 양반, 상놈이 따로 없는 게 바로 요강이었다.
이제는 그런 편리함을 안겨준 요강이 사라지고 구경조차 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어느 집이나 화장실이 바로 코앞에 가까이 있어서 캄캄한 밤에 밖으로 나갈 일도 없고 춥고 엉덩이, 볼따귀 시린 뒷간에서 바지, 치마 내리고 올리고 하여 날궁둥이 내놓고 고약한 냄새에 인상 찌푸려 가며 얼은 손 호호 불 일도 없게 됐다. 우리들은 참으로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