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수 목사/(에버그린 컴뮤니티 교회)
요즘 나오는 컴퓨터를 보면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진화(?)가 되어 있다. 무척이나 빠른 속도에 이제는 저장용량이 기가바이트(GB)도 모자라서 테라바이트(TB; 1TB는 1000GB이다)이고, 컴퓨터를 통해 영화, 음악, 인터넷 못하는 것이 없을 정도의 만능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 게다가 값도 전에 비해서 오히려 무척 싸다. 얼마전 10여년 된 컴퓨터가 하도 느리게 돌아가서 새 컴퓨터를 샀는데 $400도 채 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미국에 처음 와서 컴퓨터를 장만했을때는 거의 살림살이 장만하듯 했다. 요즘 아이들은 알지도 못하겠지만 286DX라는 기종을 $2000이나 되는 거금을 주고 샀었다. 그 때에는 참으로 큰 돈이었지만 유학생으로 꼭 필요했었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샀던 것이다. 지금의 컴퓨터와 비교해 4배 이상의 값이었는데도 성능이나 기능 모든 면에서 지금의 컴퓨터와 비교도 되지 않는다. 내 기억으로는 저장용량이 40MB (GB이 아니다)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난 20여 년간 컴퓨터를 비롯한 기기들은 우리들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무섭게 발전하고 있다. 앞으로 5년, 10년 후에는 어떤 세상이 될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미국의 사회 경제학자 Kenneth E. Boulding은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일어났던 일들과 내가 태어난 이후에 있었던 일의 양이 거의 같다 (Almost as much has happened since I was born as happened before.)”라고 말하였다. 그야말로 현재 우리는 과학문명과 사고의 가속화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쉬지 않고 변하는 현대 사회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이며, 우리들의 자녀들이 자라나는 환경이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청소년들은 여러 가지 변화를 경험하면서 때로는 혼란을, 때로는 당혹감을 느끼고 있다. 기성세대들은 이미 빠른 변화를 어느정도 포기하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이 시대에 태어난 젊은 청소년들은 현대문화와 기계적인 문명을 따라가려고 발버둥치면서 때로는 정신적인 혼란 속에서 그들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기도 하고,사회에서 소외감을 맛보기도 하며, 도덕적으로 포기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그 중 어떤 아이들은 아예 영적인 타락까지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가정이라는 환경 역시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가정은 그들의 삶의 중요한 환경 중의 한 곳이 된다. 그러나 가정 또한 21 세기로 넘어 오면서 급속한 변화를 겪고 있다. 경제적인 성장과 더불어 가정은 더 이상 “스위트 홈”이 되어 주지 않는다. 많은 어머니들이 직장을 나가고,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일에 중독이 되었다. 이혼율은 급증하고, 따라서 결손가정이 생기게 되었고, 심지어는 가정에서의 여러 모양의 폭력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된 것이다. 따라서 청소년들은 가정으로부터 느껴야 하는 신뢰와 정서적인 안정을 더 이상은 얻지 못하고, 뿐만 아니라 부모로부터 오는 사랑과 이해를 상실하게 된 것이 지금 우리들이 사는 세상의 현실이 되었다.
바로 이렇게 정신없이 흘러가는 문명사회, 혼란한 가정환경 속에서 우리들의 청소년들이 자라나고 있다.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이 시카고 지역에 있는 우리들의 자녀들의 얘기인 것이다. 우리 청소년들은 아직 성인이 아니다. 어떻게 생존해 나가야하는 지를 배우는 중이다. 그래서 그 힘겹게 생존하는 가운데 가끔씩 힘들다고 부모에게, 커뮤니티에, 교회에 SOS를 보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 세대들은 그들에게 너무 무심하다. 단지 자녀들이 자신들보다 키와 덩치가 크다는 사실에,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부모보다 더 잘 다룰줄 안다는 사실에, 그리고 성적표에 A가 많다는 사실에 만족해 한다. 그들이 어떤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정말 모른다. 물론 부모 세대들도 이민자로서 많은 어려움 속에서 살아왔음에 틀림이 없다. 한국에서 태어나 지난 시대에 격동의 세월을 보냈고, 또 이 먼 이국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자랑이고 핑계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들의 자녀들을 이 변화하는 현대 사회의 새로운 주체로 성장시킬 의무가 있는 것이다. 무분별하고, 이기적이고, 도덕적, 영적으로 타락한 사회 환경 속에서 우리 청소년들이 바른 신앙과 인격과 가치관을 가지고 이 시대를 살아가도록 해 주는 것이 우리 부모세대의 책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