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따라 인생서 하나님 대변 인생 살고 있어요”
‘여러분’의 주인공 가수 윤복희 권사
가수 윤복희의 노래에는 가슴 깊은곳에서 우러나오는 울림이 있다. 그 울림속에는 진지한 삶이 있고, 삶을 태우는 열정이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시간이 흘러가도 그녀를 기억하고 있다. 한국과 세계무대에서 만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한국의 대표 가수 윤복희가 지난
3월초 시카고를 다녀갔다. 이번 시카고 방문은 대중가수 윤복희가 아닌 하나님의 사람 윤복희 권사 간증 초청 집회를 이끌기 위해서다.
그녀가 시카고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한인들이
모였다. 개중에는 대형급 가수 윤복희가
부르는 노래와 찬양을 기대한 사람도 있고, 더러는 세상 부귀영화를 내려놓고 지극히 평범한 길을 걷고 있는
그녀의 특이한 인생 역전 스토리를 들으러
온 사람도 있다. 이틀간 윤권사는 초지일관 하나님을 만난 그녀의 삶, 하나님의 음성을 그대로 베껴쓴 간증의 노래를 불렀다.
이틀간 베들레헴교회(담임 이상규목사) 본당을 가득 메운 한인들은 그 어느때보다 진지한 모습들이다. 윤복희 권사는 하나님을 만나고 부터 인생의 새 이력서를 쓰고 있다. 하나님과 어떤 만남이 있었기에 돈과 명예 , 화려한
생활을 뒤엎고, 가난하고 수수한 새 인생의 길을 걷고 있는 걸까? 대부분
사람들은 돈을 더 벌기 위해서, 명예를
더 얻기위해서 혈안이 돼 있다. 윤권사는 이 모든 것을 거머쥘 수 있는 수퍼스타의 자리를 내려놓고, 가난하지만
마음이 부유하고, 초라한 것 같지만 광채가 빛나는 진리의 길을 택하고 있다. 연예계의 수퍼스타 윤복희에서 하나님의 행적을 대변하는 윤복희 권사의 가슴 뭉쿨한 이야기들을 정리했다.
“빗속 뒤엎친 차속…하나님 빛을 만났습니다”
“저는 1976년
2월28일 빗속 뒤엎친 차속에서 하나님의 빛을 만났습니다. “ 그때 제나이 37세.
저는 그후부터 딴따라 인생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신분을 변경하게 된 기막힌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당시 저는 인생의 황금기를 맞았습니다. 인기가 절정해 달해 화려한 인생의 쾌조를 즐기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밤이었습니다. 대구공연을 위해 규정속도를 훨씬 넘고 정신없이 달리다 내 차가 뒤집어지고 말았습니다. 내차는 반대편
차선으로 날아가 뒤집힌채 내리 꽃혔습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어서 트럭이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내차와
충돌했습니다. 완전히 살아남을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사고는 대구에서
김천 못미치는 곳에서 발생했습니다. 그때 빗속 어두운 하늘에서 섬광같이 날이선 빛을 선명하게 보았습니다.
그러더니 그 빛이 저를 뜷고 들어왔습니다. 저는 아무도 다치지 않을 것이다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갑작스런 현기증을 느꼈고, 마치 싱싱한 피를 마신것 처럼 피 냄새가 목구멍으로 스몄습니다. 쏴아하게 스미는 하얀안개를 온몸으로 느낄수 있었습니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문을 열고 내려왔습니다. 거역할수 없는 압도적인 힘에 이끌리어 저는 젖은 아스팔트위에 무릎을 끊고 손을 모으고 누군가에게 기도를 했습니다. 저는
그당시 무엇이 죄인인지도 몰랐고,
하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기도가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저를 억제할 수 없는
그 무언가에 이끌리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하나님이 저를 선택하사 저에게 들어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것이지요.
넋을 잃고 무릎을 끊고 있는 저에게 많은 사람들이 기적이다라며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차는 산산조각이 나 제가 죽을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제 몸은 고스란히 안전했습니다.
주체할수 없는 눈물이 나왔습니다.
왜 나는 나밖에 몰랐을까 ?
오후에 잡힌 공연 스케줄 때문에 순찰차를 타고 대구로 향했습니다. 차사고로 인해 약간의 타박상을 입어 거즈로 상처를 가렸습니다. 저는 공연시간이 될 때까지 호텔방에 앉아 있을수가 없었습니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밖으로 뛰쳐 나갔습니다.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너무도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이웃들의 얼굴이 다정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들이 너무나 기뻐 아무나 붙잡고 손을
잡았습니다.
‘ 어매이징 그레이스’ 불러 대중들 열광
저녁 공연에 젖은 몸으로 무대에 섰는데, 비가 오는대도 입추의 여지없이 공연장이 꽉찼습니다. 그런데 공연이 시작하려는 순간, 갑자기 천둥이 치면서 정전이 되어 촛불을 키게 되었습니다. 첫곡으로 ’캄캄한 이거리
누굴찾아 여기왔나”를 부를 예정이었는데 도저히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마이크도 없이 생목소리로 “어매이징 그레이스 …나같은 죄인살리신”를 대구극장에서 불렀습니다.
조명도 없고, 마이크도 없이 부르자 대중들이 열광했습니다. 공연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 댜. 위기의 순간을 통해 하나이 저를 불렀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내가 죄인임을 알았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기도…죽음에서 구원
공연을 마치고 다음날 새마을호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데, 제 인생이 필름처럼 펼쳐졌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죄로 인식하지 못했던 저의 행동들이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 곽규석아저씨(나중에 목사가 되어 천국에 가심)에게 전화하라는 마음이 자꾸 들었습니다. 곽규석목사는 저에게 처음으로 성경책을 선물해 주신 분입니다.
아침에 전화걸지 하고 잠을 청했습니다. 아침 일찍 벨소리가 울렸습니다.
곽규석 아저씨일 거라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곽규석 아저씨는 서대문 로타리 예식장
건너편에 있는 아시아 연합신학대학교앞에서 1시까지 오라고 했습니다. 소개해 줄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곽규섭 아저씨가 소개해 준 분은 대중문화를 구원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연예인 성경공부를 막 시작하려는 하용조 전도사(전 온누리교회 담임 목사 /고인)였습니다. 하전도사는 저에게 사도행전을 읽으라고 했습니다. 저는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2천년전에 저같은 사람을 위한 이야기가 거기 쓰여 있음을 발견하고 엉엉 울었습니다. 하전도사님은 성경공부를 준비하면서 저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누군가가 저를 위해 기도해 제가 죽음에서
구원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제 인생에 개입하셔서 제가 아닌 하나님의 인생을 살도록 했습니다.
6살부터 시작한 무대인생
교통사고이후 삶의 중심이 바뀌어
저는 6살때부터 무대인생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교통사고이후 부터는 제가 경험한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증거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성경공부등에 참여하는등 제 삶의 중심이 바뀌었습니다. 이런
저를 두고 오빠인 윤항기는 “복희가
돌았다, 미쳤다”고 울먹이며, 신문에 윤복희는
정신병원에 수용해야 한다는 호소문을 게재하는 한편, 신문기자까지 모아놓고 야단법석을 떨었습니다.
1976년 3월21자 일간신문에는 ‘윤복희 정신착란의 내막’이란 기사가 대서특필 됐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소녀 가장 역할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극단을 운영하다 정부와 반대되는 공연을 하다 방해공작으로 빚더미에 앉았고, 이의 후유증으로
마약에 손을 대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 빚을 갚기위해 유랑극단에 따라 나섰다가 갑자기 심장마비을 일으켜 돌아가셨습니다. 오빠와 저는 날마다 끼니를 잇지 못하고 굶주림에 살았습니다.
병상기도… 하나님이 들려준 가사로 ‘여러분’ 노래 만들어
한번은 몸이 너무 아파서 머리털이 빠지는 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었습니다.
MBC방송국에서 국제 가요제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해
와 참석하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나 몸이 너무 아파서 참석할 수 있을까? 걱정을 하고 병상 기도를 했습니다.
노래가사를 만들면서 하나님 저 너무 외롭고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만약 괴로울때면 내가 위로해 줄께,
네가 만약 서러우면 내가 네 눈물이 되어주마,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하나님이 들려준 가사로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바로 그곡이 여러분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베껴쓴 여러분은 국제 가요제에서
대상을 차지했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사랑하셔서 제가 외로울 때면 친구되어 주시고, 목마를 때면 물을 주시고, 추울때면
따스한 이불을 덮어 주십니다.
저의 소망은 열심히 하나님을 증거하다 하나님 꼍으로 가는 것입니다.
시카고 동포여러분, 예수님의 사랑이 여러분 꼍에 항상 계심을 믿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