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용 집사 / 베들레헴교회>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이 서로 변론하여 이제 다윗왕을 다시
모셔야할 때라 한다. 다윗왕이 두 제사장을 시켜 유다 장로들에게 왕을 다시 세우는 일을 서두르라 한다.
유다 백성은 한 형제, 한 골육이라 한다. 다윗은 요압장군에 이어 아마샤를 새 지휘관으로 세운다. 유다 사람들의 마음이 다시 다윗왕에게
기울어 간다. 다윗이 요단에 이르자 유다 족속이 길갈로 맞이하러 나온다.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오는 일에 나중이 되리라 하셨다
하고”
아마사, 그는 누구인가? 무거운 짐진 자,
다윗의 이복 자매 아비갈의 아들이다. 또 요압과는 이종 사촌간이다.
그는 반역자 압살롬의 군장이 되었고 에브라임 삼림 전투에서 압살롬 군이 완전히 패배하고 압살롬은 전사했고 그후 다윗은
유다 지파와의 화해를 위해 그는 다윗의 용서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또 요압을 대신하여 군장으로 등용되었다.
반란이 진압되자 다윗은 사람과의 화해가 시작된다.
* 구체적인 적용:
-나누는 정 -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나는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어 가며 살아야 한다. 어떤 사람하고도 모나지 않게 둥글게 둥글게 지내야 한다.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한 골육, 한 가족이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하고만 관계를 맺으려 하는 이것은 나의 가장 약한 취약점이기도 하다.
나의 왕은 그리스도 예수이다. 내 마음에 그를 모시고 있다면 모든 다른 사람들하고 관계를 맺지 못할 이유가 없다.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나랑 코드가 맞지 않는다고, 혹은 나와 취향이 다르다고 외면한다면 나는 나의 우물 안에 머무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화해를 논하기 전에 관계의 단추부터 잘 맞추어 가자. 시작부터 잘 해야
한다. ‘밥맛’이란 표현을 사람에게 빗대어 쓸 생각도 말고 입밖에도 내지 말자. 이것은 주님을 노엽게 하는 지독한 말이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고유의 성향과 그 차이를 인정하자. 주님께 지혜를 구하자.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자. 관계가 사랑의 실천이라고 믿고 있다면 그것은 주님 앞에서 치르는 실전 시험이다.
어제 집에서 올림 중창단 모임이 있었다. 장소와 음식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 집으로 이사온 이래 교회에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한꺼번에 모인 적이 어제가
처음이었다. 무조건 감사할 일이다. 주님께서 이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선물로 주셨는데, 이렇게 귀한 분들의 만남을 집에서 대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는 사실이.
어른만 30여분이 넘게 오신 것 같았다.
많이 걱정했었다. 집이 협소하면 어쩌지? 앉을
데가 없으면 어떻하나? 하지만 여기저기 앉아 식사할 충분한 공간은 되었다.
어제는 모든 것이 넉넉했던 것 같았다. 인원, 음식, 그리고 나눔에 있어 풍성한 시간이 되었다. 한번씩 이렇게 대형 손님을 치르고 나면 몸과 마음은 힘들고 바쁜데 성취감은 대단하다.
그리스도인의 성취감이란 주님께서 주신 마음인데 나눔과 섬김이라는 독특한 데에 있다. 이런 마음이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아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을 닦기를 시작하여….” ( 요 13:
5,6)
누구에게나 그리스도의 이런 정신을 전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나의 마음이라면 좋겠다.
주님, 사랑은 허다한 죄와 허물을 덮는다고 하지만, 나의 마음
속에는 주님의 가르침이 없습니다. 나의 못된 자아가 살아있어 세상의 왜곡된 가치 기준과 평가 그리고
편견이 평가관이 되어 나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사랑만이 나를 고치고 바뀔수 있게 하는 유일함을 믿습니다. 미움과 편견이 존재하지
않는 평강과 온유한 마음을 주세요. 오래 참음으로 견디어 내는 인내가 결실을 맺는 그리스도인되게
해 주세요.
마음은 언제나 사랑으로 가득찬 성령 충만함! 세상을 이기는 삶.
관계를 극복하고 풀어가는 마음 주세요.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며 마음
속에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 기도 드립니다.
아멘.